항목 ID | GC08400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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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希參 |
영어공식명칭 | Gim Huisam |
이칭/별칭 | 사로(師魯),칠봉(七峰),진재(進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영나 |
출생 시기/일시 | 1507년 - 김희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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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0년 - 김희삼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47년 - 김희삼 정언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551년 - 김희삼 수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552년 - 김희삼 이조정랑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553년 - 김희삼 삼척부사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560년 - 김희삼 사망 |
출생지 | 김희삼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
거주|이주지 | 김희삼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
묘소|단소 | 김희삼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의성 |
대표 관직 | 삼척부사 |
[정의]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개설]
김희삼(金希參)[1507~1560]은 조선 전기 명종(明宗) 대에 주로 활동한 문신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남명(南冥) 조식(曹植),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1540년(중종 35)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삼척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가계]
김희삼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사로(師魯), 호는 칠봉(七峰)·진재(進齋)이다. 김계손(金季孫)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종혁(金從革)이고, 아버지는 김치정(金致精)이다. 어머니는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 이계공(李季恭)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며, 부인은 청주 곽씨(淸州郭氏)이다. 김우홍(金宇弘), 김우굉(金宇宏), 김우용(金宇容), 김우옹(金宇顒) 네 아들을 두었다. 이 중 넷째 아들 김우옹은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고,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함께 성주에서 학문을 크게 이루었다.
[활동 사항]
김희삼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태어났다.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에게 배우고 뒤에 배이장(裵以張), 이광(李光), 송희규(宋希奎)와 함께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에게 배웠다. 1540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47년(명종 2) 정언, 1551년(명종 6) 수찬이 되었다. 1552년 이조정랑에 임명되었다가 다음 해인 1553년 삼척부사에 임명되었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자주 사직을 청하여 사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삼척부사에 재임할 때에는 백성들을 자애로 돌보았다고 전한다. 벼슬에서 물러난 후 왕이 내린 칠봉산(七峰山) 아래에 진재(進齋)란 집을 지어서 칠봉(七峰) 선생이라 불렸다. 후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칠봉일집(七峰逸集)』이 있는데, 시(詩) 8수, 부(賦) 2편, 서(書) 1편, 지문(誌文) 2편, 책문(策問) 1편이 실려 있다. 이 중 「심학부(心學賦)」에서는 경(敬) 공부를 강조하였다. 부록으로 「언행록」과 유사, 만사, 제문 등이 있는데, 이를 통해 이황과 조식, 김인후, 오건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58년(명종 13) 천곡서원을 건립하고 송(宋)의 정이(程頤)와 주희(朱憙), 조선의 김굉필(金宏弼)·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을 봉향하였다. 천곡서원이 성주 유학과 도학의 본거지가 되자 이를 중심으로 상주 사림을 향현으로 봉안하는 일이 진행되었고, 천곡서원 옆에 향현사(鄕賢祠)를 세우게 되었다. 여기에 주경(主敬) 공부에 독실했던 김희삼도 봉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