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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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一夏 |
영어공식명칭 | Hwang Il-ha |
이칭/별칭 | 자우(子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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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생년 | 1644년(인조 22) |
몰년 | 1726년(영조 2) |
본관 | 창원(昌原) |
대표관직 | 좌찬성 |
출신지 | 성남 수정구 사송동 |
묘지 |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성남 수정구 사송동(현 시흥동) 출신이다. 자는 자우(子羽). 조부는 사계(沙溪) 문인이자 김천역 찰방을 지낸 황면(黃沔)이고, 증조부(曾祖父)는 예천군수를 역임한 황입중(黃立中)이다.
아버지는 판관을 지낸 황진구(黃震耈)이며, 어머니는 김계(金棨)의 딸이다. 부인은 이시형(李時馨) 딸이며, 이조판서를 역임한 황흠(黃欽)의 재종제이다.
[활동사항]
현종 10년 기유년(1669)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그러다가 도사(都事)로 재직하던 숙종(肅宗) 22년(병자, 169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 1등으로 합격하여 관직을 더하였다.
숙종 25년(1699)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 되어서는 감찰 한배주(韓配周)의 패륜적 행각을 탄핵하였고, 그 후 사간원 정언(正言), 사헌 장령(掌令), 세자시강원 필선(弼善) 등을 거쳐 숙종 28년(1702)에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호남(湖南) 민심을 살피고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사한부 헌납(獻納)에 이어 승지로 승진하였다. 주청사(奏請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가 왕명을 받든 사신으로서 체통을 잃었다는 이유로 죄를 입었으나 다행히 책봉칙사(冊封勅使)가 도착하자 그 공로가 인정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 후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파견되어 직임을 다하였고, 이어 승지로 복직하였다. 숙종 38년(1712)에는 병조참지(兵曹參知)로 승진되었고, 그 후 병조참판(兵曹參判)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이어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후 영조 1년(1725)에 좌찬성에 올랐다가 이듬해 노병으로 죽었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현 시흥동)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