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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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八景-追憶-現在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집필자 | 이용호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명승 8개소.
[개설]
조선 시대의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의 풍요로운 물산과 아름다운 인심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세력 있는 집안치고 여기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은 사람이 없다.” [『택리지』 팔도총론(八道總論) 중]
내포는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을 일컫는데, 육지로 깊숙하게 파고든 포구, 즉 ‘안개’를 특징으로 한다. 서쪽으로 가야산에 접해 있는 서산은 내포를 대표하는 지역 중 하나다. 내포 지역의 풍요로운 자연환경은 『택리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자들과 서울 지역 사대부의 유입을 촉진하였다. 그 결과 충청도 특유의 ‘여유로움의 문화’가 탄생하였고, 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풍광 중심의 주요 명승 8개소를 일컫는 서산팔경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서산에 살어리랏다, 서산에 살어리랏다]
1619년 한여현(韓汝賢)이 지은 서산 지역의 읍지(邑誌)인 『호산록(湖山錄)』에는 산천(山川), 불우(佛宇), 누대(樓臺)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에는 8경은 아니었지만 그곳들은 서산 지역민이 경외하던 산과 들, 하천, 소망을 빌던 사찰, 선비·유생들이 시를 짓고 가끔은 수령이 쉬어 가던 누각과 정자 등으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일상적인 공간이 서산 지역의 경관을 대표하였다. 서산 주민들은 이처럼 여유 있고 풍요로운 땅에서 세세토록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택리지』를 저술한 조선 시대 인문 지리학자인 이중환(李重煥)[1690~1752]은 전국 각지를 탐방하면서, 자연과 사람 사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가 『택리지』에 적은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는 말의 숨겨진 의미는 바로 ‘서산에 살어리랏다’라는, ‘서산에 살고 싶다’라는 마음과 함께 다른 지역 사람이 서산을 바라보는 심경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시대에 밝음을 노래하다, 서산팔경의 탄생]
서산팔경이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7년 일제 강점기에 발간된 『서산군지』에서다. 당시 전국에서 진행된 시지·군지의 편찬 사업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위한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서산팔경은 경제적인 이득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하게 서산 사람이 사랑하는 풍경을 꼽은 것이다. 그러면 1927년에 선정된 서산팔경을 하나하나 둘러보자.
제1경: 부춘초적(富春樵笛)[부춘산 나무꾼의 피리 소리]
부춘산 아래 민가의 아침 연기가 걷히고 나무꾼의 피리 소리는 이어져 늦가을을 보내는데 여운이 수목 사이로 흩어져 가고 청풍과 명월은 함께 흥을 돋는구나.
제2경: 명림표향(明林漂響)[명림산 골짜기의 빨래 소리]
해가 기우는 명림 속에 비가 개었는데 아낙네의 빨래 소리와 물소리가 맑고나. 행여 음탕하고 사악함이 세상에 충만할까 봐 천 가닥이나 되는 탁한 풍진을 맑은 세정으로 바꿔 놓는구나.
제3경: 도비낙하(島飛落霞)[도비산의 저녁노을]
뾰족한 도비산이 저녁노을과 어우러지니 누(樓)와 같고 각(閣)과도 같으며 꽃봉오리와도 같은데 하늘이 우리들의 쓸쓸함을 불쌍히 여겨 신선도 한 폭을 남겨 자랑하는구나.
제4경: 상령제월(象嶺霽月)[상왕산의 비 갠 달]
장맛비가 막 개고 달이 산등성이에 막 올라오니 물소리와 산색이 저절로 시원하구나. 영롱한 서기가 세상의 더러움에 묻지 않아 백발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니 의미가 심장하도다.
제5경: 선암모종(仙庵暮鍾)[삼선암의 저녁 종소리]
삼선암에 해가 저물어 곧 범종을 울리니 소리가 길고 짧고 노래를 이루어 달과 함께 봄을 어울리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한가로운 근심이 다하는 곳은 저 이어진 봉우리뿐이로다.
제6경: 연당세우(蓮塘細雨)[연당[현 시청 앞 분수대]에 내리는 보슬비]
조그마한 연못 물에 연꽃을 심어 떠 있는 잎마다 참신하여 둥글둥글하구나. 보슬비에 꽃을 보는 흥취에 흐뭇한데 울연하면서 속세에 때 묻지 않음이 천금보다 낫구나.
제7경: 덕포귀범(德浦歸帆)[덕지천 포구로 돌아오는 배]
내덕지의 개울이 쉬지 않고 흘러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어 하늘을 닿았는데 꼬불꼬불하면서도 여유가 있으며 돛에 청풍을 싣고 육주를 돌아오는구나.
제8경: 양유쇄연(楊柳鎖烟)[양유정의 자욱한 연기]
높고 높은 나무 끝이 하늘에 닿을 것 같고 백 년 넘은 풍상을 겪었는데 영고와 성쇠를 자연에 맡겼으니 새순에 푸르게 물들이는 것도 부처님의 원황에 따르리라.
서산팔경은 명승이나 경관보다는 서산 지역의 자연환경과 그 속에 펼쳐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 감상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명승지가 중심인 다른 지역의 절경들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그중 ‘부춘초적(富春樵笛)’, ‘명림표향(明林漂響)’, ‘덕포귀범(德浦歸帆)’은 조선 말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어 서산 지역의 근대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도비낙하(島飛落霞)’, ‘상령제월(象嶺霽月)’, ‘연당세우(蓮塘細雨)’, ‘선암모종(仙庵暮鍾)’, ‘양유쇄연(楊柳鎖烟)’ 등은 지금까지 서산 주민과 전통 시대를 함께 해 왔던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그 속에 만들어진 서산의 명소 그리고 특정한 시점에만 얻을 수 있는 시각적·청각적 감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서산팔경의 풍광은 서산에서 오랜 세월 살아 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조선 말은 서산팔경의 아름다움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암울한 시기였다. 일제는 문화 통치라는 미명 아래 주민 간에 갈등을 부추기는가 하면, 산미 증식 계획 아래 쌀 수탈이 가속화되었다. 서산 지역도 간척 사업을 통한 쌀 증산과 일제의 수탈이라는 고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주민들은 풍요로운 삶의 터전에서 얻어진 생산물을 일제에 헐값에 넘겨주면서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서산팔경의 감성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풍요로운 터전을 되찾고자 하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서산팔경에는 예부터 가장 살기 좋았던 그곳, 물산이 풍부하고 인심이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서산팔경의 추억과 오늘날의 서산]
서산팔경은 오랜 기간 서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꼽혀 왔다. 1975년 출간된 『서산군지』에는 ‘서령8경’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내용은 1927년의 것과 동일하다. 다만 안흥·소성·관송·해미의 팔경을 더해 당시 서산군의 행정 구역에 포함되어 있던 다른 지역의 팔경도 함께 소개한 것이 차이점이다. 1998년 간행된 『서산시지』에서는 다시 ‘서산팔경’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서산 지역은 대규모 간척 사업과 급속한 산업화로 지형 및 경관이 많이 달라졌다. 따라서 1998년 『서산시지』가 발간될 무렵에는 ‘서산팔경’ 중 여러 곳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무꾼의 피리 소리는 물론이고, 명림산 골짜기에서 빨래하는 아낙의 모습도 사라졌다.
부춘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바다가 있어야 할 곳에 광활한 농지가 펼쳐지고, 크고 복잡해진 시내는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인들의 활기로 채워졌다. 세월의 흐름과 경제 발전이 서산의 풍광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하지만 서산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피리 소리, 빨래 소리 들리고 포구에 배가 들어오는 옛 서산팔경이 아로새겨져 있다.
[새로운 서산팔경의 탄생]
2000년 이후 서산 지역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많은 공단과 큰 산업항이 생겨나고, 간척 사업으로 담수호가 된 천수만에는 겨울 철새들이 찾아들어 장관을 이룬다. 이에 서산팔경도 새로 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주민들도 달라진 서산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명소와 풍광을 선정하는 데 동의하였다. 수차례 논의를 거친 끝에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과 서산 해미읍성이 후보에 올랐고, ‘서산구경(瑞山九景)’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여러 논의를 거쳐 서산시가 새롭게 선정한 서산팔경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경: 가야산 산수계류(伽倻山 山水溪流)[가야산 산수골 물소리]
서산에 살아 있는 물은 유일하게 가야산 속 산수골로서 가야산 산수골 물소리는 석문봉 북쪽 산 밑 발원까지 약 4㎞나 이어짐.
제2경: 석문봉 하일숙운(石門峯 夏日宿雲)[석문봉에 걸린 여름 구름]
석문봉은 가야산 제일봉으로 여름날 석문봉에 걸려 있는 구름이 장관임.
제3경: 개심사 정적지경(開心寺 靜寂之境)[개심사 경내의 고요]
개심사는 유서 깊은 사찰로 개심사 경내의 고요함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력이 있음.
제4경: 용비동 춘색만곡(龍飛洞 春色滿谷)[용비동에 가득한 봄 경색]
해미에서 운산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용비동의 봄 풍경으로 서쪽 능선을 타고 전망대까지 걷노라면 벚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룸.
제5경: 여미리 여월미야(餘美里 餘月美也)[여미리의 음력 사월 달밤]
여미리의 사월 달밤의 풍경이 장관임.
제6경: 옥녀봉 조양송림(玉女峰 朝陽松林)[옥녀봉의 아침 솔밭]
서산의 주산인 부춘산의 줄기인 옥녀봉의 아름다움이 유명한데 특히 아침 햇살이 송림 사이로 비쳐 들 때의 옥녀봉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룸.
제7경: 도비산 만하채운(島飛山 晩霞彩雲)[도비산의 저녁노을]
도비산의 저녁노을이 천수만 바닷물에 되비쳐 하늘에 오색 노을을 꽃피게 하고 주위의 구름까지 주황색으로 물들여 매우 황홀하고 아름다움.
제8경: 간월호 동절후조(看月湖 冬節候鳥)[간월호의 겨울 철새 떼]
겨울철 간월호에 찾아오는 철새의 무리가 장관을 이룸.
새 서산팔경은 ‘도비산의 저녁노을’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지정된 곳이다. 새 서산팔경 역시 옛 팔경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경관과 사람의 감성을 자아내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한 가지 못내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27년의 서산팔경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사람’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삶의 터전을 지켜 온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풍경 또한 어떠한 명승 못지않은 아름다운 울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서산의 풍광 또한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변할 것이다. 훗날에는 어떤 서산팔경이 등장할까? 그 모습이 어떠하든 서산은 여전히 풍요롭고 아름답고 편안하고 오래도록 살고 싶은 곳,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그러한 곳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