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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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湖山 |
영어음역 | Ho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제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19년 - 호산에 대한 기록이 고증된 『호산록』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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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지명 |
관련 문헌 | 『제호집』|『호산록』 |
[정의]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별호(別號).
[명칭 유래]
서산이 호산(湖山)으로 불리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원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서산의 또 다른 이름은 기군(基郡)·부성(富城)·서령(瑞寧)·서주(瑞州)이며, 조선 후기의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호산에 대한 고증은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되어 있다. 『호산록』의 서문에는 찬자(撰者) 한여현(韓汝賢)이 읍지의 제명을 ‘호산록(湖山錄)’이라 정한 연유를 기록하고 있다. 책에서는 서산의 별호인 ‘호산’에서 이름을 따 제호를 붙이게 되었고, 이 이름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군수 고경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여현은 호산이라는 별호의 연원을 알기 위해 『여지승람(輿地勝覽)』과 『서산의 제영』 등을 통하여 고찰하였으나 밝히지 못하였고, 종친 중에 호산감(湖山監)이라는 직함을 받은 사람들이 서산에 거주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호산감과 관련한 기록은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나타난다. 세조 때의 호산 부정(湖山副正) 이현(李鉉)은 양녕대군의 손자로 호산 부정에서 호산 도정(湖山都正), 호산군(湖山君)으로 직함이 바뀌어갔다. 『호산록』에서 말하는 호산감이라는 직함을 가진 종친은 이현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 조선 전기의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에 한여현이 호산이라는 지명을 고증한 내용이 나타난다. 양경우(梁慶遇)[1568~1629]의 문집 『제호집(霽湖集)』 등 조선 시대 문인들이 지은 시에서도 ‘호산(湖山)’이란 단어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