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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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余美里石佛立像 |
이칭/별칭 | 여미리 석불입상,여미리 미륵불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117-3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여성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12월 29일 - 서산여미리석불입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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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산여미리석불입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이전 시기/일시 | 1975년~1979년 - 용장천 정비 사업 때 하천에서 발견되어 현재 위치인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로 옮김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75년 - 석불입상의 목이 부러져 있던 것을 보수 착수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79년 - 석불입상의 목이 부러져 있던 것을 보수 완료 |
현 소장처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117-3[여미리 산27-1] |
출토|발견지 | 용장천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 |
성격 | 불상|석불 입상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310㎝ |
소유자 | 여미리 |
관리자 | 여미리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불 입상.
[개설]
서산여미리석불입상(瑞山余美里石佛立像)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이문안마을 야산 아래에 서 있는 석불 입상으로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장마철에 전라산 부근의 용장천(龍獐川)에서 미륵이 발견되었으며, 서산군청에 신고한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용장천에서 약 5㎞쯤 거슬러 올라간 상류에 2구의 석불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떠내려 온 것이라고 한다.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에서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형태]
발목 윗부분이 지표 아래에 묻혀 있어 원래의 모습은 살필 수 없지만, 전체 높이가 310㎝ 정도로 큰 편이다. 1매의 장방형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는데, 얼굴 길이는 90㎝, 몸길이는 230㎝, 어깨 폭은 76㎝, 얼굴 폭은 45㎝, 귀 길이는 40㎝이다. 앞면에는 얼굴과 손 등을 비교적 섬세히 조각한 반면 옆면과 뒷면에는 거친 정(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목은 부러져 있던 것을 접착하였다.
이마 쪽이 좁고 턱 쪽이 넓은 편으로 사다리꼴의 얼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에는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보관에는 관대가 남아 있지만 별다른 조식은 없다. 보관의 정면 중앙으로 1구의 좌상 화불(坐像化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심하게 마모되어 정확한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 보아 존명(尊名)이 관음보살임을 추정할 수 있는데, 화불(化佛) 이외의 여타 문양은 찾아지지 않는다.
보관 아래로는 소형의 백호공(白毫孔)이 확인된다. 상호는 통통하며 이목구비는 현재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눈의 경우 거의 감은 것처럼 조각해 놓아 전체적으로 온화한 미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목은 매우 짧아 가슴의 상단부에 이르기까지 삼도(三道)를 표현해 놓고 있다. 양쪽 어깨는 매우 좁고 둥글게 처리하여 언뜻 보면 없는 듯하다.
의습(衣褶)은 아래쪽에 비해 위쪽이 소략하고 희미한 상태이다. 법의(法衣)의 양식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 있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형상이다. 옷은 왼쪽 어깨에서 걸쳐 내려온 다음 허리 부분부터 양쪽으로 나뉘어 형식적인 반원 모양을 그리고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가슴 앞까지 치켜든 채 손바닥을 내보이고 오른손은 그 아래 배 부근에 댔는데, 팔 길이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특징]
전체적인 조각 수법이 형식적이고, 입체감이 없는 덩어리 모양이다. 또한 불상의 귀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양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지방화한 양식의 불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여미리석불입상은 어깨가 좁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지는 석주형(石柱形) 석불이다. 아울러 석불의 보관 및 조각된 화불로 미루어 관음보살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체적으로 서산시 해미면의 반양리 석불입상(磻陽里石佛立像)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작 시기는 반양리 석불입상보다 약간 늦은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의 관음보살상 양식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