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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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慶州金氏古宅 |
이칭/별칭 | 계암 고택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왕기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24일 - 서산 경주김씨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99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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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산 경주김씨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7월 18일 - 안채 산자 이상 해체 보수 및 지붕 공사, 재사벽 마감, 온돌방 구들 보충, 내부 천정 벽·바닥 수장, 기단 석재 설치 착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12월 5일 - 안채 산자 이상 해체 보수 및 지붕 공사, 재사벽 마감, 온돌방 구들 보충, 내부 천정 벽·바닥 수장, 기단 석재 설치 완료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5년 8월 14일 - 사랑채 차양 보수, 창고 시설로 변형된 구조물을 철거한 후 막돌 담장으로 정비 착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5년 11월 11일 - 사랑채 차양 보수, 창고 시설로 변형된 구조물을 철거한 후 막돌 담장으로 정비 완료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6년 4월 26일 - 부엌 덧칸채 외부 기단 정비, 부엌 후면 자연석 담장 보수 착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6년 6월 25일 - 부엌 덧칸채 외부 기단 정비, 부엌 후면 자연석 담장 보수 완료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7년 8월 4일 - 행랑채 지반 재설치 및 자연석 배수로 설치, 측간채 산자 이상 해체 후 부식된 연목 교체 및 번와 보수, 기둥드잡이 및 동바리 이음, 벽체 외엮기 및 재사벽치기, 측간채 외부에 화방벽 설치, 화장실 개축, 안채 지붕 기와로 교체 착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7년 10월 20일 - 행랑채 지반 재설치 및 자연석 배수로 설치, 측간채 산자 이상 해체 후 부식된 연목 교체 및 번와 보수, 기둥드잡이 및 동바리 이음, 벽체 외엮기 및 재사벽치기, 측간채 외부에 화방벽 설치, 화장실 개축, 안채 지붕 기와로 교체 완료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1년 - 안채의 안방과 대청 천장을 걷어 냄 |
현 소재지 | 서산 경주김씨 고택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유계리 465] |
원소재지 | 서산 경주김씨 고택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유계리 465] |
성격 | 전통 가옥|주거 건축 |
양식 | ‘ㅡ’자형 우진각 지붕[행랑채]|‘ㄷ’자형[안채]|‘ㄱ’자형 팔작지붕[사랑채] |
정면 칸수 | 7칸[행랑채]|6칸[안채]|3칸[사랑채] |
측면 칸수 | 1칸[행랑채]|1.5칸[사랑채] |
소유자 | 김기현 |
관리자 | 김기현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통 가옥.
[위치]
서산 경주김씨 고택(瑞山慶州金氏古宅)은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농경지와 낮은 구릉이 펼쳐져 있는 평지 마을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소심산이 자리하고 있다.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는 한다리마을이라고도 불리며,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경주 김씨 세거지(慶州金氏勢居地)’라고 쓰여 있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변천]
서산 경주김씨 고택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나 건축 기법과 가옥의 배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19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접해 있는 정순왕후 생가(貞順王后生家)의 작은댁이다.
1987년 7월 18일부터 그해 12월 5일까지 안채 산자에 이상이 생겨 해체 보수 및 지붕 공사를 하였으며, 재사벽 마감, 온돌방 구들 보충, 내부 천창 벽과 바닥 수장, 기단 석재 설치 등의 보수가 이루어졌다. 1995년 8월 14일부터 동년 11월 11일까지는 사랑채 차양을 보수하고, 창고 시설로 변형된 구조물을 철거한 후 막돌 담장으로 정비하였다.
1996년 4월 26일부터 동년 6월 25일까지 부엌 덧칸채 외부 기단을 정비하고 부엌 후면 자연석 담장을 보수하였으며, 1997년 8월 4일부터 같은 해 10월 20일까지는 행랑채 지반 재설치 및 자연석 배수로 설치, 측간채 산자의 이상으로 해체 후 부식된 연목 교체 및 번와 보수, 기둥드잡이 및 동바리 이음, 벽체 외엮기 및 재사벽치기, 측간채 외부에 화방벽 설치, 화장실 개축, 안채 지붕 기와로 교체 등이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안채의 안방과 대청 모두 천장이 있었는데, 2001년 수리를 하면서 천장을 걷어 냈다. 안채의 부엌은 6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깥에서 보면 3칸을 더 내어 달은 것을 볼 수 있다. 기둥의 위치와 형태로 보아 후에 증설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형태]
대문은 대로변에 인접해 있지 않고 단칸으로 담의 동북쪽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1칸 크기의 일각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 마당과 사랑 마당 동쪽에 ‘ㅡ’자형 행랑채, 서쪽에 ‘ㄱ’자형 사랑채, 사랑채 후면에 ‘ㄷ’자형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와 이어져 안마당에 틈을 두지 않은 폐쇄적인 ‘ㅁ’자 형태를 갖고 있는데, 충청남도 지방의 반가(班家)는 튼 ‘ㅁ’자형의 특징을 갖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완벽한 ‘ㅁ’자형의 형태는 영남 지방 반가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의 집을 닮았다. 안채 북쪽에는 초당이 동서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외부 공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랑 마당을 중심으로 한 사랑채와 행랑채, 중문간(中門間)을 포함하는 바깥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 공간으로 안 공간이 된다. 이 두 공간은 협문(夾門)과 부속채, 담 등으로 엄격하게 구분하였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 유학 사상이 건축 공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대문간에 서면 행랑채 동측 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외부에서 가옥 내부를 바라보는 시야를 어느 정도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며 사랑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는 동선을 제시해 준다. 대문을 들어서면 첫째로 사랑 마당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사랑채 동측 면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 마당에는 동쪽에 행랑채, 서쪽에 ‘ㄱ’자형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다. 사랑채는 장대석 외벌대의 기단 위에 방추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전툇집으로, ‘ㄷ’자형의 안채와 이어져 있으며 팔작지붕을 갖춘 5량집이다.
공간 구성은 크게 방과 부엌 창고로 구성되고 사랑채 앞에 차양이 설치되어 있는데, 살림집의 차양칸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니어서 특징적이다. 차양칸 전면은 부연을 단 겹처마로 처리하고, 후면은 부연이 없는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얹어 앞쪽을 더 길게 처리하였으며 소로수장을 하여 파련대공(波蓮臺工)으로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간결하게 구성되었으나, 사랑채보다 차양칸이 화려하게 구성된 것 또한 특징이다.
사랑 마당과 인접하여 ‘ㅡ’자형 우진각 지붕의 행랑채가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에 부엌을 두고 남쪽에는 행랑방, 북쪽에는 광이 위치해 있으며 사랑 마당에 화단이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북쪽 중문간채와 안채의 뒤뜰에는 안채와 분리되어 3칸의 초가가 배치되어 있는데 며느리가 거처하던 곳으로 방과 부엌이 구성되어 있다. 중문간채와 안채 사이에는 협문을 두어 내외를 구분하였다.
협문에 들어서면 안채로 진입하게 되는데, ‘ㄷ’자형 안채가 ‘ㄱ’자형 사랑채와 이어져 크게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에는 안방과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부엌, 우측에 건넌방이 위치해 있다. 대청 남쪽에는 부엌을 두었으며 안마당에 우물이 있다. 안채의 뒤뜰에는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다. 안대청의 구조는 1고주 5량이며, 익랑(翼廊) 부분은 3량 구조이다. 대청에는 분합문(分閤門) 위에 커다란 교창(交窓)을 끼웠다.
안채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부엌문을 통해 초당 마당으로 진입할 수 있다. 초당은 안채 뒤뜰 마당가에 위치해 있는데 3칸의 초가로 되어 있다. 방과 광으로 이루어진 초당은 내별당으로 사용된 듯하다. 중문간 맞은편에 사랑채와 배면하여 3칸의 집이 있는데, 이곳에는 참모가 살았다고 전해지며 마구간이 붙어 있다.
서산 경주김씨 고택은 안채로 진입해 갈수록 폐쇄도가 커지고, 행랑채보다 사랑채와 안채가 조금 더 높은 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비롯한 부속채들은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안채의 팔작지붕과 격식을 달리하여 건물의 형식적 위계성을 보여 주고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서산 경주김씨 고택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기현이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사랑채에는 ‘계암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서산 경주김씨 고택은 계암 고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초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원래 담만 있었던 것으로, 과거와는 달라진 사회적 관념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후에 현재 위치에 설치하였다. 부엌의 작은 문으로 나가면 작은 뜰과 광, 사랑채 화장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안채의 서쪽 담에 협문이 설치되어 있다. 협문은 정순왕후 생가와 이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정순왕후 생가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서산 경주김씨 고택은 살림집에 차양이 설치되어 있는 흔치 않은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으나 안채는 동남향, 사랑채는 서남향으로 배치 구조가 서로 다르며, 충청도 지방의 반가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조선 후기의 전통 건축 양식과 당시 부(富)에 따른 건축 재료 사용을 볼 수 있는 등 다양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