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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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奇應世旌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1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건립 시기/일시 | 1585년 - 명정을 받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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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9년 - 기응세의 6세손 기성(奇聖)이 중건 |
현 소재지 | 기응세 정려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1리 |
성격 | 정려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덕송1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기응세(奇應世)의 정려.
[위치]
서산시 팔봉면 덕송리 팔봉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덕송1리에 이르는데, 기응세 정려(奇應世旌閭)는 마을 입구 도로 좌측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변천]
기응세 정려는 기응세[1539~158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5년(선조 18)에 명정을 받아 건립된 것이다. 행주 기씨(幸州奇氏)들은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난을 피해 서산에 은거하게 되었는데, 서산에 처음 입거를 한 인물은 기응세의 손자 기민격(奇敏格)[1552~1630]이다. 경기도 일대에 거주하던 일가가 서산시 팔봉면에 정착하면서 기응세의 정려도 함께 옮긴 것으로 보인다. 명정 현판에 따르면, 현존하는 정려는 1819년(순조 19) 기응세의 6세손 기성(奇聖)이 중건하였다.
[형태]
정려 현판은 기응세의 아들 기자헌의 사당 남서쪽 벽면에 걸려 있다. 정려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바닥을 시멘트로 정비하여 낮은 사각의 초석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올렸다. 정면에 작은 문이 있고, 남서쪽 벽면은 이중으로 만들어 안쪽 벽에 현판을 걸고 바깥쪽 벽은 윗부분에 홍살[대문이나 중문 위에 만들어 댄 창살] 시설을 하여 현판이 보이도록 하였다. 그 외의 모든 벽은 시멘트로 막혀 있다.
[현황]
명정 현판에는 ‘효자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지춘추관 관상감사세자사덕창부원군행겸절교위용양위부사과기응세지문-선묘조만력을유시정숭정후사기묘육대손성중건(孝子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知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德昌府院君行兼節校尉龍驤衛副司果奇應世之門-宣廟朝萬曆乙酉始旌崇禎後四己卯六代孫聖重建)’이라고 새겨져 있다. 2011년 현재 기응세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사근절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향토 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