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791 |
---|---|
한자 | 錦城鄭氏 |
이칭/별칭 | 한우물 정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76년 - 입향조 정충신 생 |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입향조 정충신 졸 |
입향 시기/일시 | 1636년 - 입향조 정충신 묘소 예장 |
본관 | 금성 - 전라남도 나주시 |
입향지 | 대요리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
세거|집성지 | 한우물 정씨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
묘소|세장지 | 대요리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
성씨 시조 | 정성 |
입향 시조 | 정충신 |
[정의]
정성(鄭盛)을 시조로 하고 정충신(鄭忠信)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개설]
금성 정씨(錦城鄭氏)는 지곡면 대요리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성씨로 ‘한우물 정씨’라고 불린다. 임진왜란과 이괄(李适)[1587~1624]의 난, 정묘호란 등의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운 정충신[1576~1636]이 사패지를 받은 후 350년 이상 세거하고 있다.
[연원]
금성 정씨의 시조 정성은 하동군(河東君) 정세유(鄭世裕) 12세손으로 1330년(충숙왕 17) 문과에 합격하여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오르고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다. 그가 금성(錦城)[나주의 별호]에 세거를 하게 됨으로써 하동(河東)과 금성으로 본관이 갈리게 되어 정성이 금성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입향 경위]
본래 금성 정씨는 전라도 광주에 세거하고 있었는데, 정충신이 1633년 당진에 유배된 인연으로 말년을 서산 대산에서 은거하다가 대요리의 지세를 살펴보고 묘소를 정하면서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편 서산 대요리 지역은 정충신이 이괄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후 이 일대를 사패지로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요리 일대는 인조반정의 논공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이괄 가문의 땅이었다고 한다. 대요리 정씨가의 가계를 이은 것은 정충신의 둘째 아들인 정빙(鄭砯)이었다. 첫째 아들은 지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둘째 아들에게 승종(承從)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현황]
지곡면의 금성 정씨는 4백여 년간 세거해 오면서 세칭 ‘한우물 정씨’라고 불리고 있다. 현재 자손들이 외지로 출향하고 30여 가구만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지곡면 대요리 한우물마을에는 금성 정씨와 관련한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금성군 정충신을 모신 사당인 진충사(振忠祠)는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6호로 지정되었으며, 사당 내에 보관된 정충신 장군의 유품은 중요민속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품은 영정(影幀) 1점, 갑옷 1점,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 1점, 향로 1점, 향합 1점 등 모두 5점이다.
또한 2011년에는 금성 정씨정충신 일가의 고문서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진충사의 뒤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국사봉 남향 사면에 정충신의 묘와 묘비[높이 119㎝, 폭 48.5㎝, 두께 21㎝]가 있는데, 모두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묘의 서측에 1998년에 후손들이 새로 세운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