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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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基東 |
영어음역 | Han Gid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 한기동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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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3·1 만세 운동 |
몰년 시기/일시 | 1997년 - 한기동 졸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대통령 표창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건국훈장 애족장 |
거주|이주지 | 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
활동지 | 경기도 장단군 진남면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한기동(韓基東)[1898~1997]은 본관은 청주, 평양 출신이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경기도 장단군 진남면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같은 해 3월 26일 백태산(白泰山)·이성구(李成九)·이창영(李昶永) 등 100여 명의 인사와 함께 성화학교(聖化學校)를 출발하여 인근 지역을 돌면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대동단(獨立大同團)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김가진(金嘉鎭)·송세호(宋世浩)·이을규(李乙奎)·전협 등과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중국 상하이로 보내 망명 정부를 세우고 제2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인다는 계획을 추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른 뒤 1922년 8월 15일 출옥하였다. 1997년 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