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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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興源 |
영어음역 | Choe Heungwon |
이칭/별칭 | 복초(復初),송천(松泉),충정(忠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공신.
[가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복초(復初), 호는 송천(松泉).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이고, 할아버지는 최영호(崔永灝), 아버지는 전첨(典籤) 최수진(崔秀珍)이다. 어머니는 이세신(李世臣)의 딸이다.
[활동 사항]
최흥원(崔興源)[1529~1603]은 1555년(명종 10) 소과를 거친 후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장령,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동래와 부평의 부사를 지냈는데, 1578년(선조 11) 부평부사로 재임 중 효릉(孝陵)[인종과 비 인성왕후 박씨의 능] 정자각(丁字閣) 보수 기일을 지키지 못해 파직되었다가 다시 승지로 기용되었고, 1588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지중추부사를 거쳐 1592년(선조 25)에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유성룡(柳成龍)의 파직에 따라 영의정에 기용되었다. 최흥원은 세자를 평안북도 강계(江界)까지 배종한 뒤 의주에서 다시 왕을 호종하였다. 1593년 병으로 사직하였으며, 영돈령부사, 영평부원군에 봉해졌다.
한편, 최흥원은 『호산록(湖山錄)』을 편찬한 한여현(韓汝賢)의 아버지 한경춘(韓慶春)과 막역한 친구 사이로, 한경춘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들 한여현과 계속 교류함으로서 『호산록』을 완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에 한여현은 『호산록』에서 최흥원에게 평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서산과의 밀접한 관계를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였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 당시 두 차례나 왕을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에 호성공신 2등에 추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