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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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春山玉女峯祈雨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향교골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부춘산 옥녀봉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향교골 부춘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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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기우제 |
의례 시기/일시 | 가뭄 시 |
신당/신체 | 부춘산 옥녀봉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향교골 부춘산 옥녀봉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의례.
[개설]
부춘산 옥녀봉 기우제는 가뭄이 닥쳐 농사에 큰 지장이 있으면 관과 읍민들이 합동으로 서산시청의 뒷산인 옥녀봉[187.6m] 상봉에서 비가 내리기를 빌면서 행하였던 제사이다. 서산의 진산인 부춘산 옥녀봉은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에 비정되는 명산으로서 일찍이 고을의 읍민에게 숭배를 받아 온 산이다.
기우제를 위해 3~4일 전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길일을 잡는다. 그리고 이를 각 마을에 알려 땔감을 갹출하는 한편 생솔가지를 베어 집채 크기의 나무더미를 옥녀봉 상봉에 쌓아 둔다. 기우제를 지낼 제관은 초헌관·아헌관·종헌관·축관·집사 등을 선출하는데, 으레 군수가 초헌관을 맡고 나머지 제관은 면장이나 유림, 주민 대표들이 각각 분담했다. 제물은 통돼지와 술 등인데, 이때 희생으로 바치는 돼지는 잡털이 박히지 않고 부정하지 않은 ‘꺼먹돼지’를 사용한다.
[연원 및 변천]
속설에 따르면 옥녀봉 상봉에는 천하의 명당이 자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묘를 쓰면 그 집안은 발복을 얻어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고을에는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치거나 괴질이 창궐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1927년 이민영이 편찬하고 중앙인쇄소에서 간행한 『서산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현 군청의 뒷산 이름이 부춘산[북주산]인데 그 최고봉을 옥녀봉이라 한다. 산봉우리 밑에는 음택(陰宅)의 길지가 있으나 군의 뒷산이므로 감히 묘를 쓰지 못하게 한다. 미신을 믿는 자가 혹 밤에 와서 투장(偸葬)을 하면 반드시 읍에 괴질이 발생하는데, 이는 옛적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다. 1925년 봄에는 많은 읍인들이 화를 내어 시신을 묻은 구덩이를 찾고자 서로 더불어 도모하여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북주산에 누군가가 몰래 묘를 쓴 것이다.’고 하여 다투어 수색하고 발굴하여 시신을 버렸는데 심히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한발이 들면 읍민들은 옥녀봉에 누군가 시신을 몰래 매장한 것으로 믿고 읍민들이 총동원되어 기어이 시신을 발굴했던 것이다. 실제 일제 강점기에는 몰래 평장(平葬)을 한 사람이 발각되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한다.
옥녀봉 기우제는 60여 년 전까지 지속되다가 중단되었다.
[절차]
기우제를 지내는 날 동문동과 읍내동 등 각 마을의 주민들은 미리 옥녀봉으로 올라가서 솔가지를 베어 수북하게 쌓아 둔다. 저녁 무렵에 제관을 비롯한 읍민들이 모두 집결하고 제물이 진설되면 나무더미에 불을 붙인다. 그러면 생솔가지가 타면서 자욱한 연기가 온 산을 뒤덮는다. 이는 읍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하늘에 고하는 동시에 그 연기가 올라가서 먹구름이 되어 비를 내려 줄 것이라는 유감 주술의 원리를 담고 있다. 불길이 치솟는 동안 유교식으로 기우제를 지낸 뒤 참석한 주민들은 함께 음복을 하고 하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