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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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계약을 통하여 제공한 농업 노동력에 대해 주어진 삯 또는 그 일.
[개설]
고지는 지난날 춘궁기에 쌀을 빌려 먹고 농번기에 품으로 갚는 관행이다. 가난한 농민이 농번기에 이르기 전에 식량을 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는데, 논 한 마지기에 값을 정하여 모내기부터 마지막 김매기까지의 일을 해 주기로 하고 미리 받아 썼다. 서산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쌀보다는 주로 현금으로 고지가 이루어졌다. 모내기 고지의 경우 외지에서 들어오는 전문 고지꾼이 등장할 정도로 1980년대까지도 농촌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모두 소멸되었다.
고지는 품팔이 노동의 대표적인 관행이다. 고지는 조선 후기에 사회 경제적인 부의 일정한 축적이 이루어지는 임노동적인 이윤 추구 단계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일제 강점기 본격적인 농촌 분해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농민을 토지에서 유리시켰다. 이 과정에서 임노동이 본격화되었고, 고지는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에게 최후의 생계 수단으로써 기능한 측면이 있다.
[내용]
서산 지역에서는 고지를 흔히 ‘고지 먹는다’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이래 임노동으로 변화하여 주로 현금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즉 부유한 가정에서 논 10마지기에 대하여 고지를 놓는다고 가정했을 때, 그 주인은 고지꾼들에게 미리 품값을 준다. 고지 품삯은 마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해의 품값보다 조금 더 후하게 쳐주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면 고지를 먹은 사람은 선불로 돈을 받는 대신에 지주가 원하는 날짜에 반드시 일을 해 주어야 한다. 고지품은 주로 모내기·김매기 3회를 기본으로 이루어진다. 또 이와는 별도로 서산 지역에서는 모내기철에 모심기만을 대상으로 하는 고지도 성행했는데, 이때는 외부에서 고지를 전담하는 전문 고지패가 마을로 들어오기도 했다.
삭[삯]고지의 관행도 두루 행해졌다. 이는 고지꾼이 주인집으로부터 식사와 새참을 제공받지 않고 자기 집에서 먹고 일을 해 주는 것을 말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밥값 명목으로 일반 고지보다 품삯을 조금 더 받기도 했다.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의 경우 품값은 동일하게 받으면서도 식사를 제공받지 않고 일을 해 주는 고지를 ‘삭멕이’ 또는 ‘막고지’라 불렀다.
마을에서는 ‘고지애비’라 하여 고지를 주선하는 책임자가 있었다. 고지애비는 고지꾼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을 일컫는데, 수단이 좋고 마을에서 신용을 얻은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았다. 따라서 고지를 놓는 지주는 고지애비를 통하여 필요한 일손을 미리 맞추고 품값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