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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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
집필자 | 박종익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12월 22일 - 서산군 음암면 유계리에서 강영모[남, 53]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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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서산민속지』하 수록 |
관련 지명 | 한다리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
채록지 | 서산군 음암면 유계리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
성격 | 전설|명당파손담|지명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김씨|이씨|스님 |
모티프 유형 | 명당 파손|사기|지명 유래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서 한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154~157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2일 충청남도 서산군 음암면 유계리[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강영모[남, 53]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조선 시대 중엽 서산 신장리 일대에 전주 이씨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당시 이 집안에 종살이를 하는 김씨가 있었다. 그는 늘 면천(免賤)을 꿈꾸며 살았는데, 하루는 스님이 찾아왔다. 그는 스님을 반기면서 어떻게 하면 종살이를 면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스님은 두 가지 처방을 해야만 면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소탄산 아래에 연못이 있는데 그 속에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산다. 이 용을 잡아야 면천할 수 있다. 그러자면 소금 천 가마니를 연못 속에 넣고 연못을 메워라. 그러고 나서 이웃해 있는 거울바위를 깨트려야 한다.”
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종 김씨는 주인에게 다가가 주인에게 고하였다.
“어느 고승이 말하길 여기 이씨네들이 더 등양(騰揚)하려면 연못을 메우고 거울바위를 깨트려야 한다고 합니다. 연못 속에 이무기가 살면서 심술을 부려 이씨네들이 더 큰 부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라고 거짓 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씨는 종의 말에 따라 인부를 동원하여 연못을 메우게 하였다. 인부들이 연못에 천 가마니의 소금을 넣자 그곳에 살던 용이 견디지 못하고 기어 나와 죽었다. 이어 쇠망치를 동원하여 거울바위를 깨트렸다. 그러자 그 속에서 봉(鳳) 한 쌍이 나와 하늘로 날아갔다. 이 봉은 허공을 어느 정도 날다가 지금의 한다리 근처에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이 봉이 내려앉은 곳을 한다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뒷날 마을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지명을 한다리라고 한 것은 이 봉이 인부들의 망치질에 다리 하나가 부러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연못을 메우고 거울바위를 깨트리고 난 뒤 이씨네는 가세가 기울어 망하였다. 아울러 집에서 부리던 종들도 대부분 면천시켜 내보냈다. 종살이 하던 김씨도 이때 면천되어 한다리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그리고 대대손손 내려오며 살림이 번창하였고, 문중에서 부원군을 배출하는 등 지체 있는 문중을 이루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한다리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파손, 사기, 지명 유래 등이다. 김씨라는 인물이 자신의 면천을 위하여 이씨 집안이 살고 있는 터의 기운을 파손시킨다는 명당 파손담이다. 아울러 이러한 행위가 이씨에 대한 김씨의 사기 행위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는 점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명당 파손은 명당 점유자의 과욕이나 폭력성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다리의 유래」에서는 이러한 점유자의 욕심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인부의 망치질에 봉의 다리 하나가 부러졌기 때문에 한다리라고 한다는 지명유래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