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209
한자 平安村
영어공식명칭 Pyeonganchon
이칭/별칭 피양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정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개설]

평안촌(平安村)군자염전 제방 축조 공사 때 평안도 사람들이 집단 이주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6.25전쟁 후 평안도, 황해도 피란민 및 염전 활동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이주민들로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시화지구 개발로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며 옛 모습을 잃었다.

[명칭 유래]

평안촌은 옛 수인선 군자역 주변에 있던 마을로 1922년 군자염전 제방 축조 당시 평안도 용강군 등지에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평안도 사람들의 집단 정착지라서 평안촌이라 하였고, 피양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21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시흥 서해안 지역에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을 만들고자 제방 축조 공사를 하였다. 당시 군자염전도 만들어졌는데, 군자염전 제방 축조 공사는 1925년 3월에 완공되었다. 넓은 갯벌이던 이곳을 염전으로 바꾸는 작업에 평안도 출신 인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때 정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평안촌으로, 사투리로는 피양촌이라 불렀다. 평안촌은 옛 수인선 군자역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마을을 이루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평안도, 황해도에서 피란민들이 모여들었다. 이후에 경제활동[염전]을 하기 위해 유입된 전국 각지의 이주민들까지 평안촌은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모여 정착하는 곳이 되었다.

규모가 커지자 ‘웃평안촌’과 ‘아래평안촌’으로 나누어졌다. 아래평안촌은 역전, 아랫동네, 웃동네, 오동나무골, 굴뚝촌 등이 있었고, 웃평안촌은 과수원과 농경지가 야산 아래 펼쳐져 있었다. 군서초등학교의 개교와 군자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번화한 전성기를 맞이했던 평안촌시화지구 개발로 일대 변화를 맞이하였다. 아파트와 주택들이 건설되면서 이전의 마을 모습을 잃었고, 협궤열차가 달리던 수인선도 1994년 한대 앞에서 소래포구까지 가던 구간마저 폐선되면서 평안촌의 번성을 가져왔던 군자역은 문을 닫았다. 2000년 안산선이 개통하자 정왕역이 옛 군자역 자리에 세워졌다. 현재 역 주변에는 오동나무골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오동나무골도 평안촌의 한 마을이었다.

[자연환경]

멀리 정왕산[봉화산]이 북서쪽으로 있고, 앞으로는 드넓은 염전이 펼쳐져 있던 평안촌은 현재 대부분 아파트 단지와 다가구주택으로 변모했고, 일대 전체가 과수원이던 웃평안촌의 일부가 농경지로 남아 있다.

[현황]

평안촌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 주거 단지와 안산선 주변 상가, 경기도시흥교육지원청, 영화관 등 주민 편의 시설이 형성되어 있다. 굴뚝촌이 있던 자리에는 주유소와 함께 유휴지들이 남아 있다. 배나루, 봉우재마을과의 접경 지역은 아직 농토가 많이 남아 있다. 2017년 정왕역 일원에 도시 재생 사업이 확정 발표되면서 또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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