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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289
한자 佳南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개설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74㎢
가구수 183가구
인구[남/여] 297명[남자 150명/여 147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잠과 남산대를 합하여 가남(佳南)이라 하였다. 남산대는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비교적 큰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매화이발 형상으로 꽃봉오리처럼 된 곳에 형성된 마을이 가남리(佳南里)다. 가남리 대숲 속에 숨겨져 있는 지름 3m, 넓이 2.5m, 높이 0.6m 고인돌로 미루어 선사 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339년 문전공 인빈(印份)의 후손인 교동 인씨(喬桐印氏)들이 들어와 조선 전기까지 살았다. 또한 고려조 순화백의 봉작을 받은 설자승(薛子升)의 후손인 순창 설씨(淳昌薛氏)가 살고 있다. 신말주(申末舟)세조(世祖)가 조카인 단종(端宗)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대사간 관직을 내놓고 처 순창 설씨의 고향인 이곳에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남은 생을 보냈다. 또한 안동 권씨 권효(權曉)세조의 왕위찬탈 후 처향인 순창에 낙향해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남산오산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 가잠 마을은 개가 잠자는 명당이라 하여 개잠이라 불리다 조선 고종(高宗) 때 가잠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잠의 가자와 남산의 남자를 따서 가남이라 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연 환경]

경천양지천이 합류하여 가남리 가잠 마을 앞을 흐른다. 강천산에서 내려온 경천금과면에서 내려온 사천이 가잠 앞에서 합류하여 섬진강으로 흐른다.

[현황]

2021년도 12월 현재 가남리의 면적은 총 1.74㎢로, 논 35만 1,201㎡, 밭 31만 6,030㎡, 임야 43만 1,437㎡, 기타 63만 9,906㎡이다. 인구는 183가구, 297명으로 남자가 150명, 여자가 147명이다. 마을 뒤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지나가고, 순창 요양 병원이 들어서 있다. 국도 27호선이 마을을 지나간다. 1984년부터 운영되었던 광주 대구 고속 도로의 순창나들목은 고속도로의 확장공사와 함께 2015년 7월 7일부터 가남리 575-2번지로 이전하여 운영되고 있다.

남산리에서 광주 대구 고속 도로 3중 터널을 지나면 권씨 집성촌인 가잠 마을이 있다. 가잠 마을에 효자각 1기, 가남 마을에 효자각 2기가 있고, 보물 제728호인 『설씨 부인 권선문(薛氏婦人勸善文)』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89호인 신경준(申景濬)의 고지도가 국립 전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남 마을 앞에 순창읍 농공 단지가 형성되어 장류 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경지 정리와 수리 시설이 잘 되어 논농사를 위주로 많은 소득을 올린다. 설씨 부인·신경준 선생 유지[귀래정 신말주 후손 세거지]귀래정이 잘 보존되어 연중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17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고속도로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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