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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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大仁 |
영어공식명칭 | Kim Dae-in |
영어음역 | Kim Dae-in |
영어공식명칭 | Kim Dae-in |
이칭/별칭 | 충숙(忠肅)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욱 |
활동 시기/일시 | 1598년 - 김대인 광양전투 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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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0년 - 김대인 임치진첨절제사에 임명 |
출생지 | 김대인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
부임|활동지 | 김대인 활동지 - 전라남도 순천시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관직 | 임치진첨절제사 |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순천 출신의 무관.
[가계]
김대인(金大仁)의 본관은 김해(金海), 시호는 충숙(忠肅)이고, 순천부 별량면[현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서 출생하였다. 김대인에 관련된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한 생몰연대와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6세기를 전후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대인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에는 여수 석보촌에 살고 있었다.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해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라좌수영의 군졸들은 민가의 가축을 약탈하는 등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김대인은 행패를 부리는 군졸에게 매질을 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이 김대인을 불러 문책하였으나, 김대인은 굴하지 않았다. 이후 이순신은 진상을 자세히 살핀 후 잘못된 것을 깨닫고서 김대인을 장하게 여기고, 승진시켜 비장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김대인은 전라좌수군과 함께 분전하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뒤 당시 수군통제사 원균(元均)[1540~1597]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자 김대인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유격전을 펼쳐 일본군을 물리쳤다. 그 후 이순신이 수군통제사로 복귀하자 다시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598년(선조 31) 광양전투에서는 부상 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굴함이 없이 싸워 많은 적병을 격퇴하였다. 이후 1600년 광양전투의 공으로 당상관에 올라 임치진첨절제사에 임명되었으나 뜻에 맞지 않아 사직하였다. 그 뒤 전라좌수사 이유직(李惟直)[1552~?]의 비행을 면박하다가 의금부에 투옥되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죽었다.
[상훈과 추모]
김대인은 공적을 인정받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 2등공신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