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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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禎 |
영어공식명칭 | Lee Jeong |
영어음역 | Lee Jeong |
영어공식명칭 | Lee Jeong |
이칭/별칭 | 강이(剛而),구암(龜巖)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욱 |
[정의]
조선 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이정(李楨)[1512~1571]의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이다.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이담(李湛)이며, 어머니는 진주정씨(晉州鄭氏)이다.
[활동 사항]
이정은 1536년(중종 31) 유학자의 신분으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정의 나이 52세인 1563년(명종 18) 순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순천부사로 부임하면서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행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순천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임청대를 찾아 그 터를 수습하였다. 임청대는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와 김굉필 등이 머물던 곳이었다. 이정은 임청대를 다시 수축하고 그 옆 언덕에 경현당과 임청대비를 세웠다. 경현당이 완성된 다음해인 1565년 순천 지역 사족들의 적극적인 요청을 받아들여 경현당 옆에 옥천정사를 건립하였다. 경현당에서 김굉필을 제향하고 옥천정사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삼게 하였다. 옥천정사가 건립되고 3년이 지난 1568년(선조 원년) 옥천서원의 편액을 하사받았다. 호남 최초의 사액서원이었다.
이정의 옥천서원 건립은 순천 지역 성리학 진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정의 성리학 진흥을 계기로 순천 지역에서 성리학적인 질서가 점차 뿌리를 내려가는 동시에, 신흥 입향 사족을 주축으로 하는 사림의 활동이 본격화하였다. 이정과 함께 옥천정사 건립을 주도했던 이들은 배숙(裵璹)[1516~1589], 허형(許亨)[1489~1564], 정소(鄭沼)[1518~1572] 등 이른바 승평사은(昇平四隱)이었고, 승평사은은 김굉필과 학맥 상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인물들이었다.
[학문과 저술]
이정은 젊어서는 어득강(魚得江)[1470~1550]과 송인수(宋麟壽)[1499~1547]에게 사사하였다. 나중에는 이황과 조식의 지우를 입었다. 학문은 물론 개인의 처신까지도 이황을 추종해 섬겼으며, 퇴계학맥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구암집』·『성리유편(性理遺編)』·『경현록(景賢錄)』·『논상례(論喪禮)』·『한훤보록(寒暄譜錄)』·『열성어제(列聖御製)』 등 6종의 책을 찬집, 간행하였다.
[묘소]
이정의 묘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심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정은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구암두문로 361-17[구암리 80]에 있는 구계서원(龜溪書院)[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호]에 제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