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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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詵庵 |
영어공식명칭 | Doseonam Hermitage |
영어음역 | Doseonam Hermitage |
영어공식명칭 | Doseonam Hermitage |
이칭/별칭 | 도궤암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도선길 202-160[비촌리 705]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이종수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비촌리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암자.
[건립 경위 및 변천]
도선암에 관한 기록은 『범우고(梵宇攷)』,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도선암 소장 중수기 등이 있다. 1799년(정조 23)에 간행된 『범우고』의 순천사찰 조에는 “도궤암(道詭庵)은 운동산에 있다[道詭庵在雲動山].”라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도선(道詵)’을 ‘도궤(道詭)’로 잘못 기록한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조선사찰사료』에는 1849년(헌종 15)에 원응(圓應) 계홍(誡泓)이 찬술한 「운동산도선암중창기(雲動山道詵庵重創記)」가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도선암은 도선국사가 도(道)를 이루고 창건한 곳이다. 창건 이후 수차례 중수했으나 전해진 문헌이 없어 알지 못하며, 1831년(순조 31) 월추(月秋), 성관(性官), 혜월(惠月) 등 세 승려가 “이곳에 절을 옮겨 힘겹게 조그만 암자를 세웠다[移建此基僅構小庵].”라고 하였다. 「운동산도선암중창기」로 볼 때, 아마도 원래 도선암은 현재 위치가 아니었는데 1831년에 지금 위치로 옮겼던 것 같다. 그 뒤 15년이 지난 1846년(헌종 12)에 서씨(徐氏) 순월화(順月華)가 여러 신도와 힘을 합쳐 건물을 수리하여 불상과 독성·나한상 및 팔부신중탱을 모셨고, 1849년(헌종 15)에는 비구 재순(在珣)과 함께 법당을 단청하고 칠성·신중탱 및 현왕·산왕상을 갖추었다고 한다.
암자 내에 전해오는 기록으로는 1838년(헌종 4)에 찬술된 「승평부남도선암중창기(昇平府南道詵庵重創記)」 현판이 있다. 「승평부남도선암중창기」 현판 기록은 앞서 언급한 원응 계홍의 「운동산도선암중창기」보다 11년 앞선 기록이지만, 그 내용은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였다. 다만 1831년에 월추, 1835년(헌종 원년)에 성관, 1838년에 혜월이 중창하였다고 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1948년에 주지로 있던 안동일(安東日)이 「운동산도선암중건록(雲動山道詵庵重建錄)」을 찬술하였다. 「운동산도선암중건록」에서 도선암은 742년(경덕왕 원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742년은 도선국사가 탄생하기 이전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선암 법당을 복원하기 위해 목재를 쌓아 두었으나 1948년 여수 순천10.19사건과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건물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6.25전쟁이 끝난 이후 신도들이 성금을 모아 새로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신도 성금 기록을 보면, 면장과 지서장 등을 비롯하여 그 숫자가 1백여 명에 달한다.
현재 도선암 건물은 모두 1990년 이후 신축 및 재건되었다. 대적광전과 그 오른쪽에 있는 요사채는 1990년에 건립되었다. 대적광전 좌측 위쪽에 있는 삼성각·조사전은 2002년 11월에 재건되었다. 도선암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무심선원 건물은 2006년 봄에 건립되었다.
[설화와 풍수지리]
도선암 아랫마을인 순천시 상사면 비촌리 서동(瑞洞)마을과 선동(仙洞)마을의 유래가 도선국사와 관련이 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가 경주 가야산에서 수행하다가 서쪽 먼 곳에서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밝은 서광이 비치는 곳을 따라 찾아와서 도선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불교 신도들이 너무 많아 도선암까지 오르지 못하고 움막을 설치하여 살면서부터 지금 서동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한편, 도선국사가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지를 쓴 곳이 선동마을이며, 선동마을에는 ‘도선굴’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다고 한다.
원응 계홍의 「운동산도선암중창기」에는 “운동산의 형세는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향해 웅크리고 있고 순천의 산은 도망가는 사슴이 둥지를 찾는 모습이므로, 호랑이가 포효하면 사슴이 엎드리는 형국[山之形 飢虎求食 邑之脉 走鹿尋巢 則虎風鹿伏]”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호랑이의 입에 해당하는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경쇠[옥·돌·놋쇠 등으로 만든 타악기]를 울리면 호랑이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믿어 이곳에 암자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향림사 대적광전 뒤 감실(龕室)이 바로 호랑이 입에 해당한다고 한다. 풍수지리로 볼 때 도선암이 있는 운동산은 굶주린 호랑이가 순천시를 향해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 입에 해당하는 곳에 도선암을 세움으로써 순천의 재앙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도선암은 순천시 상사면 비촌리 서동마을과 선동마을 사이에 있는 운동산(雲動山)[465m] 봉우리 바로 밑에 있는 암자이다. 운동산 중턱 기슭에 무심선원(無心禪院), 요사채 2동, 대적광전, 삼성각, 조사전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도선암 대적광전 뒤 자연암반으로 형성된 감실의 벽면에 ‘나무산왕대성위[南無山王大聖位]’[자경 12~15㎝]라는 음각명문이 보인다.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우물이 있는 곳에는 우물을 조성해준 공덕주의 명문이 있다.
가로 57㎝, 세로 110㎝ 되는 수직평면에 ‘석정시주(石井施主)’라 가로 글씨로 쓰고 그 밑으로 ‘장평면 장산동 서학모 기사생 자 석순 신사생 을미 오월일(長平面長山洞徐學模己巳生子錫順辛巳生乙未五月日)’이라 음각하였다. 장평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 전라남도 순천군 장평면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삼성각 뒤 4m 바위 절벽에 ‘시주 최치유(施主崔致有)’[자경 16㎝]라는 음각 명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1988년 조사에서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나한상·동자상·목판·북 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목판[대수구대명왕대타라니(大隨求大明王大陀羅尼), 가로 62㎝, 세로 31.5㎝, 두께 5.5㎝, 양면 양각]과 북[원통 직경 59㎝, 길이 54.5㎝] 만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