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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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望聖庵 |
영어공식명칭 | Mangseongam Hermitage |
영어음역 | Mangseongam Hermitage |
영어공식명칭 | Mangseongam Hermitag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건립 시기/일시 | 1637년 - 망성암 건립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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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용강서원 - 전라남도 순천시 공마당1길 64[금곡동 256-1] |
원소재지 | 망성암 -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 |
성격 | 누정|정자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 앵무산 중턱에 있었던 조선 후기 정자
[건립 경위]
망성암(望聖庵)은 양신용이 병자호란 이후 관료이자 신하로서 국난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국권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앵무산(鸚鵡山) 속에 지은 누정이다. 그래서 ‘망성’에는 죄인의 심정으로 성상(聖上)[임금]을 멀리서 바라본다는 뜻이 들어 있다. 양신용은 망성암 곁의 대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하였다.
양신용의 자는 경중(景仲), 호는 장춘(長春)·구옹(龜翁),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증손자이다. 전라도 화순(和順)에 살다 현 순천시 해룡면으로 이거하였다. 양신용은 함안군수(咸安郡守), 인동부사(仁同府使), 경주영장(慶州營將)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군사를 이끌로 안주(安州)까지 진군하였는데, 남한산성 조약 소식을 듣고 물러났다.
[위치]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 앵무산 중턱에 있었다.
[변천]
망성암은 양신용 사후 관리되지 못해 터만 남게 되었고, 현재 앵무산에 그 터와 유허비가 남아 있었다. 후손들이 양신용과 양팽손을 기리기 위해 1821년(순조 21) 현 순천시 해룡면 중흥리에 용강서원(龍岡書院)과 낙천사(樂天祠)를 세웠는데,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70년 지역 유림이 용강서원과 낙천사를 현 순천시 공마당1길 64[금곡동 256-1]에 이건하면서 이름을 옛날처럼 ‘용강서원’이라 하였다. 제주양씨 문중이 용강서원에서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양신용과 양팽손을 제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망성암은 양신용의 은거지이자 사군지정(思君之情)을 표출한 곳이고, 후인들에게 충의지사(忠義之士)의 면모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또한 17세기 순천 지역 누정의 역할과 의미를 살피는데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누정의 범주 가운데 암(庵) 명칭을 쓰는 일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