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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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憤歌 |
영어공식명칭 | Manbunga(Literature Work) |
영어음역 | Manbunga(Literature Work) |
영어공식명칭 | Manbunga(Literature Wor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54년 - 조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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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500년 5월 7일~1502년 8월 하순 - 「만분가」 저술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03년 - 조위 사망 |
성격 | 문학 작품 |
작가 | 조위 |
[정의]
조선 전기 조위가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읊은 가사.
[저술 시기]
「만분가」는 조위(曺偉)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평안도 의주(義州)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순천으로 이배(移配)[귀양지를 옮겨 감]되어 와서 지은 가사이다. 조위는 의주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초가 주위에 해바라기를 심고 ‘규정(葵亭)’이라 하며 임금을 향한 충정과 해배(解配)[귀양의 형벌에서 풀림]를 염원하였지만, 순천으로 다시 이배[귀양지를 옮겨 감]되자 자신의 원통하고 비분강개한 심정을 선왕(先王) 성종(成宗)에게 하소연하였다. 1500년(연산군 6) 음력 5월 7일 순천으로 이배된 조위는 1502년 음력 8월 하순에 순천읍성 서문 밖 옥천(玉川) 가에 임청대(臨淸臺)를 짓고, 공맹(孔孟)의 관수지도(觀水之道)를 징험하며, 낙천지명(樂天知命)을 지향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조위의 「만분가(萬憤歌)」 저작 시기는 1500년 5월 7일 이후로부터 1502년 8월 하순 이전으로 볼 수 있다.
[구성]
「만분가」는 천상(天上)에서 하계(下界)로 추방된 선녀가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선녀는 조위를, 옥황상제는 선왕 성종을 각각 비유한다. 한편으로는 「만분가」가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식을 취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만분가」는 총 124행 247구로 되어 있다.
[내용]
「만분가」의 내용은 크게 3단락, 9단락, 13단락으로 다양하게 나누어 볼 수 있는데, 3단락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사(序詞)는 1행~10행으로, 가슴속에 쌓인 말을 옥황상제에게 하소연하겠다고 함으로써 현실 체념의 심정이 내포된 임과의 이별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본사(本詞)는 11행~120행으로, 일편단심을 서술한 후 억울한 유배 생활에 대한 호소→순응→체념→원망→체념으로 이어지는 심리 상태를 드러내면서 사화(士禍)로 인한 억울한 유배 생활을 호소하며, 옥황상제의 처분으로 해배를 소망한다. 이 과정에 임에 대한 충절과 연모의 정을 드러내고 있다. 결사(結詞)는 120행~124행으로, 자연물로 변신해서라도 임 곁에 있고 싶은 절박한 심정과 변함없는 사랑을 표출하고 있다.
[특징]
「만분가」는 3·4조 또는 4·4조의 자수율(字數律)을 주조(主調)로 하되, 2음보 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만분가」는 80행 160구의 일반기준을 넘어 장형가사(長型歌辭)에 속한다. 표현방법은 대구를 활용하고 있다. 「만분가」에서는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 표현을 위해 불교나 도교 용어를 차용[빌려 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만분가」는 『시경』과 『초사(楚辭)』의 사미인적(思美人的) 심상과 고려시대 「정과정」의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의 가사 형식을 빌려 재현함으로써 유배가사의 효시로 평가된다. 「만분가」는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에 영향을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