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47 |
---|---|
한자 | 義城素宇堂古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55[산운리 17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난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월 7일 - 의성 소우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237호로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의성 소우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의성 소우당 고택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71-2 |
성격 | 주거 건축 |
정면 칸수 | 6칸[안채]|5칸[안사랑채]|5칸[사랑채] |
측면 칸수 | 5칸[안채]|1.5칸[안사랑채]|5칸[사랑채] |
소유자 | 이견 |
관리자 | 이견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산운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변천]
소우당 고택은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주택이다. 안채는 1880년대에 개축하였다고 전한다.
[위치]
의성 소우당 고택은 영천 이씨(榮川李氏)의 집성촌인 산운리 산운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탑리리에서 가음면사무소 방향으로 난 지방도 68호선을 따라 약 2㎞ 정도 가다 보면 우측에 산운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형태]
전면에 세운 6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 마당을 사이에 두고 ‘ᄂ’자형의 사랑채와 ‘ᄀ’자형의 안채가 튼 ‘☐’자형의 배치형태를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는 ‘一’자형의 문간채가 있고 그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는 내측간이 있다. 안채의 서쪽에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그 안에 안사랑채 또는 별당으로 불리는 건물을 배치하였다. 주위에는 연못과 각종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몄으며, 안채와 사랑채에서 각각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두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5칸 반 규모의 ㄱ자형 건물인데, 평면은 좌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이 연접되어 있고, 건넌방의 전면으로는 축이 꺾이어 중간방, 대청, 갓방이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는 중문간의 좌측에 자리 잡고 있는데 좌로부터 2통칸의 사랑마루, 2통칸의 사랑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인데, 평면은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이 연접되어 있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간을 두었다.
의성 소우당 고택의 공간 분할을 보면, 장인(匠人)인 목수에게만 맡겨서 지은 집이 아니라 화가나 풍수가의 참여가 있었다고 보인다. 금성산 영기를 받아들이는 지세를 살리고 개울에 못을 조성하고 외딴 산길의 오솔길을 내고, 깊고 한적한 터에 유연함을 더하는 별당을 짓고 심산의 원림을 조성하였다. 살림집 공간은 사랑마당, 안마당, 뒷마당을 밝게 트이게 하여 햇볕을 받아들이게 하여 서쪽 별원과 대조적인 경관을 조서하였다.
사랑 마당은 314.7㎡[95.2평]인데, 안채 뒷마당은 사랑마당 면적 2배가 되는 622.2㎡[188.2평]이며, 별원공간은 3,177㎡[961.1평]으로 살림집 공간 면적 1,595㎡[482.5평]의 2배가 되도록 마당과 별원을 분할하였다. 이것은 상지(相地)와 입기(入基)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정이합의(精而合宜)를 이룬 경지를 보는 것 같다.
[현황]
2000년 1월 7월 국가민속문화재 제23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어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전면에 안내판을 설치하여 관람객의 편의를 돕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정침의 좌측에 위치한 안사랑채 또는 별당으로 불리우는 건물을 중심으로 각종 수림, 연못, 보도 등이 조성된 정원이 꾸며져 있어 조선 시대 별서 건축(別墅建築)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