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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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內山里石佛坐像 |
이칭/별칭 | 의성 내산리 석불,의성 내산리 석조 여래 좌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소호 1길[내산리 산25]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황정숙 |
이전 시기/일시 | 1977년 - 의성내산리석불좌상 미륵당에 봉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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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6월 19일 - 의성내산리석불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의성내산리석불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장처 | 의성내산리석불좌상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내산리 산25 |
성격 | 불상 |
재질 | 석재[사암질] |
크기(높이) | 167㎝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내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석불.
[개설]
의성내산리석불좌상은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소호 1길[내산리 산25] 내동 마을 가자골의 얕은 구릉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77년에 시멘트 벽과 기와 지붕으로 된 보호각을 지어 미륵당이라고 부르며, 그 보호각 내에 석불을 봉안하여 왔으나, 2012년 현재는 오래된 보호각을 헐어내고 노천의 자연 암반 위에 시멘트로 기단을 만들어 남향으로 안치하여 놓은 상태이다. 원래의 위치와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지만, 주변에 많은 기와편과 정 맞은 돌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위치가 원래 절이 있었던 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성내산리석불좌상은 세 차례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수난을 당하였다고 하며 지금은 목 부분을 시멘트로 접합시켜 놓은 상태이다. 1995년 6월 1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의성내산리석불좌상의 전체 높이는 167㎝, 불두 높이는 62㎝이다. 민머리의 소발(素髮)에 정수리에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 있는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양쪽 귀와 머리 우측부가 훼손되었으며, 얼굴에서도 두 눈과 코, 입의 훼손이 심하여 원형이 뚜렷하지 않다. 양 볼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전체적으로 얼굴형은 동그랗고 비교적 좁은 이마에는 별도의 보주를 박았던 백호공(白毫孔)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법의는 양 어깨를 감싸며 내려오는 통견(通肩)으로 옷 주름은 가슴 중앙에서 V자 모양으로 모아지는데, 마치 한복 깃처럼 왼쪽 깃이 위로 가도록 여미어서 있다. 목 둘레를 따라 엄액의(掩腋衣)가 타원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소매를 걷은 것처럼 팔 중간까지만 걸쳐진 소매자락은 하체로 내려와 무릎 아래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깨부터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 옷 주름은 결가부좌한 무릎을 덮고 흘러내린다. 옷 주름의 선 새김은 전체적으로 굵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두텁고 무겁게 느껴지며 불상의 뒷면 등 뒤까지 연결되어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나타내고 있는데, 왼손 손바닥 위에는 커다란 약그릇 같은 것을 얹고 있어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비례, 조각 양식 등을 볼 때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의성내산리석불좌상은 사암질의 석재에 조각된 석불 좌상이다. 전체적인 비례에 비해 머리와 손, 발 등이 크게 표현되어 있어 균형감이 떨어지고 조각 수법도 둔탁하다. 어깨도 좁게 움츠려져 있으며, 법의의 옷 주름도 두텁고 간략하게 등 간격을 이루며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지방 양식으로 속화된 약사여래불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