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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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氷溪里氷溪洞刻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4-3 |
집필자 | 김용만 |
현 소재지 | 빙계리 빙계동 각석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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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빙계리 빙계동 각석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4-3 |
성격 | 각석 |
양식 | 각석 |
관련 인물 | 최치원|이여송 |
크기(세로) | 282㎝ |
크기(가로) | 94㎝ |
관리자 | 의성군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각석.
[건립 경위]
빙계리 빙계동 각석은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의 글씨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글씨라고도 전해지나, 명확한 건립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4-3에 자리하고 있다. 빙계동 마을 건너편에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그 아래로 계곡을 따라 무수한 바위가 있다. 계곡을 따라 아래로 가다 보면, 유난히 큰 바위가 보이는데 그 벽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형태]
바위 벽면을 장방형으로 약간 파서 면을 고른 후에 약간 행서를 겸한 해서로 ‘빙계동(氷溪洞)’이라 새겼다. ‘계(溪)’ 자의 크기는 76×94㎝이며, 깊이는 2.7㎝이다. 글자가 쓰인 전체 면적은 282×94㎝이다.
[현황]
비지정 문화재이며, 보호 시설이나 안내 표지판은 없다.
[의의와 평가]
비록 전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신라 말 고운 최치원, 혹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글씨라는 데 신비감을 준다. 여기에 더하여 실제로 매우 더운 여름 삼복 때 얼음이 얼고 시원한 바람이 나오기 때문에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으며, 마을 이름 또한 오랜 옛날부터 빙계리라 불리고 있다. 특히 2011년 1월 13일 ‘의성 빙계리 얼음골’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527호로 지정되었으니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