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84
한자 金致中
이칭/별칭 정이(靜而),응봉(鷹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김치중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군
학교|수학지 경상북도 안동시
활동지 건마산(乾馬山) - 임진왜란 전투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임란 창의 순절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정이(靜而), 호는 응봉(鷹峯).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외증손이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이종질(姨從姪)이자 문인이다. 부인은 임진왜란시 그를 따라 순절한 평산 신씨이다.

[활동 사항]

김치중(金致中)[?~1592]은 천품(天稟)이 순후하고 면학(勉學) 독행(篤行)하였으며, 멸사봉공 정신이 투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해 4월 각 곳에 격문을 보내 의병 모집하였다. 우선 아우 김치화, 종제 김치홍, 김치강, 김치공 및 숙부 김응주 등 일문(一門)을 포함한 향리의 용건자(勇健者)들이 천연 요새인 건마산에서 왜군을 맞아 분투하였다. 전세가 불리하여 아우 등 친족들과 많은 병사들이 호국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전사하자 스스로 절벽에서 투신하여 순절하였고, 그의 부인 평산 신씨와 종제와 여종 복분(福分)도 그를 뒤따랐다.

[상훈과 추모]

본인과 부인 평산 신씨, 종 복분이 함께 순절하니 세칭 일가 삼강(一家 三綱)이라 하였다. 의열각은 1609년(광해군 1) 나라에서 정려를 명하여 비각을 세웠고 오랜 풍상에 낡아 1903년 재건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日帝) 관헌들이 비석을 땅에 묻었는데, 광복 후 점곡 초등학교 박전서(朴奠緖) 교장과 유시벽(柳時碧) 학회장의 주선으로 다시 세웠다. 1956년 새 비석을 세우고 비각을 중수하였다.

이용자 의견
김** [가계]에 '송은 김광수의 외종손'이라 했는데 '외종손(外從孫)'이 아닙니다. '외증손(外曾孫)'으로 고쳐야 합니다.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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