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373
한자 鳳南書堂
이칭/별칭 봉남당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 3길 41-28[덕지리 1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00년경연표보기 - 봉남 서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88년 - 봉남 서당 중건
현 소재지 봉남 서당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 191지도보기
성격 서당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5칸
소유자 김녕 김씨 문중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개설]

봉남 서당(鳳南 書堂)김진엽(金振曄)이 건립하였다. 김진엽의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봉남(鳳南)이다. 덕양 서원(德陽 書院)에 배향된 김문기(金文起)[1399~1456]의 5세손이다.

[위치]

봉남 서당(鳳南 書堂)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 3길 41-28[다인면 덕지리 191]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경로당에서 덕지 3길을 따라 직진하면 양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길을 따라 약 150m 이동하다 보면 오른편에 계단식 농지와 산과 수원사이로 좁은 길이 보이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봉남 서당이 있다.

봉남 서당은 계단식 농지 가운데에 있는데, 서당의 동북쪽으로는 산과수원이 있고, 서쪽에도 비봉산(飛鳳山)의 산자락 하나가 내려와 감싸고 있다.

[변천]

봉남 서당은 자료의 소략으로 초창기 역사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다만 1888년 김용하(金溶夏)[1873~1941]가 쓴 「봉남 서당 중건기」를 통해 간략하게 살펴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경상북도 상주에 살던 김진엽비봉산 남쪽으로 이주하여 봉남당을 세웠다고 한다. 당의 이름은 비봉산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임진왜란 으로 소실된 것을 1888년(고종 25) 김용하의 조부 김창규(金昌奎)와 그의 아우 김도규(金道奎)가 중건을 결심하고 예천 군수의 허락을 얻어 현재 다인면 달제리에 있던 선학사(仙鶴寺)의 건물을 뜯어다가 봉남당 옛 터에 중건하였다. 이때 남덕재(覽德齋)와 조양헌(朝陽軒) 등을 증축하였다.

중건 기문은 김진엽의 9세손인 김용하가 부친 김성해(金聲海)의 명을 받아 지었고, 봉남 서당(鳳南 書堂) 현판은 조선 말 명필로 알려진 고영찬(高永贊)이 썼다

기문을 쓴 김용화는 봉남당에서 학문을 강마하기도 하고 ‘봉하대 시모임(鳳下臺詩契)’을 만들어 활동하였다고 전해진다.

[형태]

봉남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2.5칸 규모의 팔작지붕[우측의 마루만 맞배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좌측방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退間]을 설치하였고, 우측방의 전면에는 개방하여 마루 1칸을 돌출시켜 ‘ㄱ’자 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기와를 얹은 토석담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데, 서당의 뒤편에 둔덕이 있어 계단식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현황]

봉남 서당은 비지정 문화재로, 서당을 활용 한 콘텐츠는 아직까지 운영되지 않고 있다. 주변에 위치한 김용하 고택 등과 연계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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