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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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義李氏 |
영어공식명칭 | Jeonui 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삼례읍|봉동읍|용진읍|구이면|이서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53년(단종 1) - 전의이씨 입향조 이창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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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14년(중종 9) - 전의이씨 입향조 이창수 사망 |
입향지 | 전의이씨 입향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
세거|집성지 | 전의이씨 세거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
묘소|세장지 | 전의이씨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
성씨 시조 | 이도(李棹) |
입향 시조 | 이창수(李昌壽) |
[정의]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창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는 고려 건국 때 태조를 도운 공으로 태사(太師)에 오른 이도(李棹)이다. 조선 초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으로 후백제를 정벌하러 금강에 이르렀을 때 물이 범람하자 이도가 태조를 보호해 강을 건넜으며, 이 공으로 인해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벼슬이 태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의현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입향 경위]
전의이씨가 전주에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이창수(李昌壽)[1453~1514] 때부터이다. 이창수는 연산군 때인 1504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예조정랑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창수가 귀동(龜洞)[현 완주군 구이면]에 낙향해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했다. 이창수의 처가가 전주의 토호인 전주류씨이며 처가를 따라 낙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계내력]
전의이씨 이창수 이래 이창수의 아들 이효충, 손자 이승효, 증손자 이정란 등 4대에 걸쳐 문과자가 배출되었다. 이정란은 임진왜란 때 전주성을 수호한 인물로 문과에 급제하고 전주부윤과 삼도소모사에 오른 인물이다. 이정란의 증손자는 전북 출신 4명의 정승 중의 하나로 숙종 때 우의정을 역임한 이상진(李尙眞)이다. 전의이씨는 연안이씨와 함께 구이면에 세거했던 사족으로, 문과자를 대대로 배출하고 정승이 배출됨으로써 전주의 대표적인 사족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전주에 세거한 전의이씨는 장파, 중파, 계파 등 3계파로 발전한다. 숙종대 우의정에 오른 만암(晩庵) 이상진은 장파이다.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대사간을 지낸 목산 이기경 계열은 중파이다. 전의이씨들은 붕당정치로 인해 갈등을 빚게 되었다. 본래 전주의 전의이씨들은 당색이 서인이었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면서, 장파의 만암 이상진 계통은 소론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반면에 목산 계통은 철저한 노론이었다.
[현황]
전의이씨는 구이면의 명문가로 항가리, 두현리, 석구리, 문정리, 안덕리, 계곡리, 성덕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또 이정란의 후손들이 소양면 삼태동, 용진읍 금상리[현 전주시 금상동], 이서면 원동·상림·은교·앵곡 등에 세거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에 노량전투에서 순절한 이영남 장군의 후손들이 봉동 낙평리, 용진읍 순지리·지동리, 고산 남봉리, 조촌 반월리[현 전주시 반월동], 봉동 구미리·구만리·용암리, 삼례 산수리·후정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15년 완주군에 거주하던 전의이씨는 1,121명이었다
[관련 유적]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입향조 이창수의 묘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