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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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景麟 |
영어공식명칭 | O Gyeong-rin |
이칭/별칭 | 응서(應瑞),운치(雲痴)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만오 |
출생 시기/일시 | 1846년(헌종 12) - 오경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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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82년(고종 19) - 오경린 임오 증광시(壬午增廣試)의 진사시(進士試)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915년 - 오경린 사망 |
출생지 | 오경린 출생지 -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봉림(完州郡 鳳東邑 栗所里 鳳林) |
성격 | 관인 |
성별 | 남자 |
본관 | 낙안(樂安) |
대표 관직 |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용담군수(龍潭郡守)|운봉군수(雲峰郡守)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의 관인.
[가계]
오경린(吳景麟)[1846~1915]의 자는 응서(應瑞), 호는 운치(雲痴), 본관은 낙안(樂安)이다. 아버지는 오도상(吳道常), 아들은 오영익(吳寧翼)이다.
[활동 사항]
오경린은 1846년(헌종 12)에 태어났으며, 37세 때인 1882년(고종 19) 임오 증광시(壬午增廣試)의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오경린의 아버지 오도상과 아들 오영익 또한 소과 합격자였다. 삼대(三代)가 연벽(連璧)[일정한 분야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던 셈이다. 오경린은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직(蔭職)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거쳐 전라도 용담군수(龍潭郡守)와 운봉군수(雲峰郡守) 등을 지냈다. 1915년에 향년 70세로 사망하였다. 오경린은 한때 출생지인 전라북도 완주를 벗어나 용담(龍潭)의 주자촌(朱子村)에 살았다. 용담은 오늘날의 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한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