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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476
한자 古文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서동일

[정의]

경기도 양주 지역에 전해지는 옛 문서.

[개설]

사전적인 의미에서 고문서(古文書)는 1910년 이전의 문서를 의미한다. 1910년 이후의 문서는 근대 문서로 정의된다. 현재 양주 지역에 전해지는 고문서를 보면, 수원 백씨 문중에 유서(諭書) 4건, 교지(敎旨) 88건 등, 부여 서씨 문중에 백패(白牌)·홍패(紅牌) 2건, 교지 36건 등, 충주 최씨 문중에 교지 20건 등이다. 이밖에 안민용가 소장 자료, 우성웅가 소장 자료, 김영진가 소장 자료, 조종식·조영준가 소장 자료가 있다.

특히 안민용 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은 형식과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유서(諭書)는 군사권을 지닌 국왕이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관찰사·절도사·방어사·유수 등에게 국왕 본인과 해당 관리만이 아는 밀부(密符)를 내리면서 함께 발급하는 명령서로, 군대의 자의적 동원을 미리 막기 위해 준비되는 문서를 가리킨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작위·자격·시호·토지·노비·특전 등을 내릴 때 주는 문서이다. 이 가운데 관직을 내리는 교지를 고신(告身), 문과·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교지를 홍패,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교지를 백패라고 한다.

[내용]

양주에 전해지는 고문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 백씨 백유함(白惟咸) 가문은 전형적인 무반 가문이다. 16세기에 처음으로 병마첨절제사를 지낸 백유함을 배출한 이래 그 후손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지방 군대의 고위직에 진출했다. 부여 서씨 서필원(徐必遠) 가문은 전형적인 문관 가문으로, 17세기에 서필원이 성균관대사성·형조판서 등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 그 후손들이 서필원과의 혈연관계, 개인적인 관리 역임 경력, 근기(近畿) 유력 가문과의 혼인 등을 통해 사족(士族) 가문의 지위를 유지했던 사례를 보여 준다.

충주 최씨 최제(崔濟) 가문은 19세기에 한 가문에서 유교 윤리를 모범적으로 실천한 인물을 연이어 배출함으로써 국가로부터 3대에 걸쳐 정려(旌閭)를 받음과 동시에 관직에 진출했다. 최제 가문은 과거 시험의 합격자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국가가 권장하는 효행(孝行)의 모범적인 실천을 통해 사족(士族)의 지위를 유지하는 경로를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양주의 각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가 한 인물의 문서에 국한되지 않고 선대와 후손의 문서를 아우르고 있어 조선 시대의 문중 및 사회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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