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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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仁傑先生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2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도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97년 - 백인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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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79년 - 백인걸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13년 - 백인걸 신도비 조성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7월 26일 - 백인걸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제58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백인걸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백인걸선생묘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산26[좌표: N37° 51′ 55.2939″, E126° 57′ 24.4570″] |
성격 | 능묘|묘|분묘|무덤 |
양식 | 단분 합장 |
관련 인물 | 백인걸(白仁傑)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백인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청백리(淸白吏) 백인걸(白仁傑)의 묘.
[개설]
백인걸[1497~1579]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며 문신이다. 자는 사위(士偉), 호는 휴암(休菴)이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일신을 돌보지 않고 윤원형(尹元衡)[?~1565] 일파의 음모에 대항하여 후대에 길이 칭송되었다. 1567년(명종 22) 양주목사가 되었을 때에는 공납의 폐단을 개혁하는 등의 치적을 쌓아 고을 사람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선조 대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청백리에 뽑혔다.
[위치]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서 광적면 덕도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효촌초등학교 앞 삼거리에 효촌저수지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난다. 효촌저수지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백인걸선생묘(白仁傑先生墓)를 알려 주는 표지판이 나타나며, 표지판을 따라 광적면 효촌리 효계울마을로 들어가면 백인걸선생묘에 이른다.
[형태]
묘는 단분 합장(單墳合葬)이고, 묘표(墓表)·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동자석(童子石)·망주석(望柱石)·문인석(文人石)·장명등(長明燈) 등의 옛 석물을 갖추었다. 좌향(坐向)은 북향이다.
묘표는 원수형(圓首形) 1면 비로, 비석의 규모는 너비 54㎝, 두께 18㎝, 높이 122㎝이다. 문인석은 복두 공복(幞頭公服)을 착용하였고, 총 높이는 179㎝이다. 동자석의 총 높이는 80㎝이다. 장명등은 사모 합각지붕 옥개석을 갖추었으며, 총 높이는 173㎝이다. 묘소 앞 서편 구릉에 있는 전 부인인 평택 임씨(平澤林氏)의 묘에는 정방형의 옥개형(屋蓋形) 묘표가 서 있다.
한편 신도비는 이수형의 4면 비로, 규모는 이수가 너비 105㎝, 두께 40㎝, 높이 66㎝이고, 비석이 너비 90㎝, 두께 28㎝, 높이 180㎝이며, 비좌가 너비 156㎝, 두께 96㎝, 높이 58㎝이다.
[금석문]
묘표 비석 앞면에 ‘증 좌참찬 행우참찬 시충숙 휴암백선생 휘인걸지묘 증정경부인 순흥 안씨 부좌(贈左參贊行右參贊諡忠肅休庵白先生諱仁傑之墓贈貞敬夫人順興安氏祔左)’라 새겼다.
신도비의 비제는 ‘유명 조선 자헌대부 의정부 우참찬 겸 동지경연사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시충숙 휴암백선생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資憲大夫議政府右參贊兼同知經筵事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諡忠肅休庵白先生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판중추부사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지었고, 대사헌 송준길(宋浚吉)[1606~1672]이 썼으며, 예조판서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전액을 썼다. 비문의 내용을 통해 1713년(숙종 39) 숭정(崇禎) 두 번째 계사년에 신도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1981년 7월 26일 경기도 기념물 제5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관리자는 백인현이다. 현재 백인걸선생묘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홍살문과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으며, 묘역 하단부에 신도비가 있다. 비각을 세워 신도비를 보호하고 있으며, 신도비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백인걸선생묘에 다다른다.
[의의와 평가]
백인걸은 조선 전기 청백리의 표상으로 양주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며, 백인걸선생묘는 풍수지리에서 이야기하는 북쪽을 향하고 있는 ‘북향 명당(北向明堂)’의 대표격에 해당하는 묘로서 풍수학자들이 자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