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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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華亭 - 岩刻文 |
이칭/별칭 | 금화정지 암각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33-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선주 |
현 소재지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산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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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암각문 |
양식 | 음각 |
크기(높이, 길이, 둘레) | 133㎝[‘금화영[수]석’ 암각문 높이]|133㎝[‘금화영[수]석’ 암각문 너비]|70㎝[‘관민동락’ 암각문 높이]|150㎝[‘관민동락’ 암각문 너비]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금화정(金華亭) 터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각문.
[건립 경위]
금화정 터 암각문에 ‘금화영[수]석(金華永[水]石)’이라 하면서도 ‘관민동락(官民同樂)’이라 써 있는 것을 보면, 금화정에서 경치를 감상하면서도 항상 백성과 즐거움을 같이해야 하는 목민관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위치]
양주시 유양동 양주별산대놀이전수회관 가까이에 복원된 금화정에서 위쪽으로 50m 정도 올라가면 원래의 금화정 터가 나오는데, 금화정 터 암각문은 금화정 터 옆에 있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있다. ‘금화영[수]석’과 ‘관민동락’을 음각한 바위가 마주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금화정에서 이들 바위 암각문이 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금화영[수]석’ 암각문은 높이 133㎝, 너비 133㎝ 정도의 바위를 편평하게 다듬어 20㎝ 크기의 글자를 음각한 것이고, ‘관민동락’ 암각문은 높이 70㎝, 너비 150㎝ 되는 장방형 바위에 우에서 좌로 12㎝ 정도 크기의 글자를 음각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금화정 터 암각문은 금화정에서 풍광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할 때에도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늘 유지하기 위해 새긴 것으로, 조선 시대 지방관의 목민 정신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