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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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敬玉齋 |
영어음역 | Gyeongokjae |
영어의미역 | Gyeongokjae Shri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935[삼덕1길 19] 삼덕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영옥 |
성격 | 사우(祠宇)|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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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현대식 콘크리트 주택 건물에 기와지붕 |
건립시기/일시 | 1992년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935[삼덕1길 19] 삼덕 |
소유자 | 김해김씨 녹사공파 문중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개설]
경옥재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49세손 김관(金管)[1250~1348]을 중시조로 하는 녹사공파(錄事公波) 후손의 재실이다. 김관은 자가 희범(希範), 호가 정성헌(靖醒軒)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김관의 자손인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문민공(文愍公)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의 후예를 삼현파(三賢派)라 한다. 김관은 삼현파의 파조(派祖)이며 문중의 중시조다.
김관의 5세손 김극일의 여섯 아들에 와서 문중은 다시 6개의 지파(支派)로 나뉘어졌다. 그 가운데 녹사(錄事)를 역임한 다섯째 아들 김인(金韌)이 녹사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경옥재가 있는 삼덕(三德)마을에는 김관의 19세손으로 조선 순조 때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 兼 五衛將)을 지낸 김문곤(金汶坤)이 처음 입향하여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김해김씨는 현재 양산시의 개곡리·용연리·삼수리·신평리·답곡리·법기리 등에 세거하고 있는데, 그 중 답곡리에는 녹사공파의 후손 김문곤이 처음으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위치]
경옥재는 하북면 답곡리 삼덕마을 입구에서 좌측의 오솔길로 약 400m 올라가면 나타나는 고바위가 있는 곳에 경주김씨 재실과 나란히 있다.
[변천]
김해김씨 녹사공파 후손들은 선조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재실을 준공하여 ‘경옥재’라 이름하였다. 재실 대문의 현판은 김해 구지봉의 ‘구’자와 삼덕의 ‘삼’자를 따서 ’구삼문(龜三門)‘으로 이름하였다. 시조 수로왕, 중시조 김관, 중시조의 19세손으로 양산 답곡리 입향조인 김문곤 등을 모시고 있다. 재실 건립의 전말을 기록한 「경옥재창건기」가 『양산의 누정재지』에 수록되어 있다.
[형태]
경옥재는 일반 주택과 같이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재실 대문인 구삼문을 통해 안으로 진입하면 ‘경옥재’ 현판을 단 재실 건물이 나온다. 정면 4칸은 각각 세 짝의 미닫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다.
[현황]
현재 경옥재는 김해김씨 시조와 중시조 및 양산 입향조 등을 향사하고 있다. 향사일은 매년 음력 10월 15일을 기준하여 전후의 일요일이다.
[의의와 평가]
경옥재는 김해김씨 녹사공파의 일부 후손이 조선 순조 때 처음으로 양산 답곡리에 정주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건물이다. 또한 녹사공파 문중 일동이 선조들을 향사하면서 후손들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