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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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龍臺 |
영어음역 | Ballyongdae Height |
영어의미역 | Ballyongdae Height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 73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현오 |
성격 | 대(臺)|명승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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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화룡리 어곡동 736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화룡리 어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건립경위]
영일인(迎日人) 처사(處士) 정상순(鄭相淳)이 축조하였다.
[형태]
할석을 쌓아 반구형으로 담장을 둘러놓았으며, 바닥에는 평평한 자연석을 깔아놓았다. 그 위에는 장기·바둑·고누판이 새겨져 있다. 건너편 바위에는 휴룡연(休龍蓮)이라는 각서가 있다. 수석(水石)의 기절(奇絶)이 많아 읍재(邑宰)와 문인(文人)들의 제영(題詠)이 있다. 정재윤(鄭在綸)이 쓴 「반룡대기(盤龍臺記)」와 정진근(鄭鎭根)이 쓴 「반룡대에 올라[登盤龍臺]」라는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반룡대기(盤龍臺記)」
“ 양산군은 영남의 궁벽한 곳으로 풍속이 아름답다. 산은 나는 듯하고 물은 달려서 낙동강 달을 향하여 금릉(金陵)에 이르며, 바다 구름은 봉래(蓬萊)에 이어지니, 그 서북쪽 여러 산봉우리와 골짜기의 특이한 것이 취서산(鷲棲山) 기슭이 된다. 그 외에 원적산(圓寂山)과 금정산(金井山) 또한 모두 명산으로 서로 가까운 듯 먼 듯 안고 서있으니 그 중에 은거하는 사람이 있구나. 우곡(愚谷) 골짜기를 거쳐 명(明)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십리나 되는 바위 계곡은 서쪽으로 내달아 산에 둘러싸이고 들이 펼쳐진 곳에 이르니, 이가 화룡동(化龍洞)이다. 이 마을 앞에는 대(臺)가 있고 그 위에는 소나무가 있으니, 그 평평하고 구불구불한 형상이 늙은 용과 같아서 이곳을 반룡(盤龍)이라 이름하였다. 여기에 대를 쌓은 이가 누구인가? 처사(處士) 정옹(鄭翁)이 그러하니 정옹은 가히 뜻이 있다 하리라.
옛날 한 그루의 나무와 하나의 돌이 있어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나무는 비로소 그늘이 되고 돌은 자리가 되었더니, 비록 바람 부는 아침과 비 오는 저녁이라도 나아가서 휴식하는 장소로 삼으니 산수 가운데서 세상 시름을 잊었었구나. 위에는 신선의 봉우리가 솟았고, 선대산(仙臺山) 아래로는 그윽한 골짜기가 깊이 감춰져 있으며, 땅은 평범하지 않으니 사람 또한 근접하기가 쉽지 않구나. 봄바람에 꽃나무, 여름비에 폭포는 가히 감상하여 즐길 만하고 가을서리에 국화는 늦은 향기요, 겨울눈에 높은 소나무는 무성한 푸르름이니 대를 둘러싼 것들이 사시(四時)를 이어 소식을 전하고 있구나. 골짜기가 끝나면서 마을이 열리니 샘을 파서 술을 빚고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길렀으니 유유히 감상하는 즐거움이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으리오?
아아! 옛사람이 지은 대가 많으나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어째서 그러한가? 사람은 가고 없되 대는 남게 되며, 대는 오래되어 그 이름은 남게 된다. 이 반룡대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산이 높고 물이 긴 까닭이 아닌가 한다.
내가 화룡동에 있는 정사(精舍)에 잠시 머물고 있을 적에 정옹의 종손되는 세련(世連)[『영일정씨세보(迎日鄭氏世譜)』에는 이름이 세기(世基)로 되어 있는데,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이 나를 찾아와 반룡대의 기문(記文)을 부탁했으나, 나는 고루(固陋)하여 감당치 못한다고 생각하여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나 나는 원래 산수를 즐겨 유람하는 사람이라 결국 이 기문을 쓰게 되었다. 동치(同治) 개년(改年) 경오(庚午, 1870년) 8월 상순 동래 정재윤 삼가 씀(夫梁郡於嶠南 地僻而俗美 山飛而水走 向洛月於金陵 挹海雲於蓬萊 其西北諸峰林壑特異者 鷲棲山之餘麓也. 圓寂金井亦皆名山 而便相拱立若近若遠 庶幾有隱居其間者乎. 由愚谷而入明者乎. 十里岩溪西而別有回山開野之處 卽龍洞也 村前有臺 臺上有松 其盤旋屈曲猶老龍然 故名地以盤龍也. 及其卜築其人爲誰 處士鄭翁也. 然則鄭翁可謂有志哉. 昨日一木與一石 與經數年之間 木始成陰 石亦就榻 其的見物意 則雖風朝雨夕 無日不至此以爲休息之所 蓋山水間忘世也. 其上仙峰聳立 下則幽壑深藏 地有不常 而人亦未易也 若春風之花樹 夏雨之瀑布 可賞而可娛 秋霜之䕺菊 冬雪之喬松 晩香而茂翠 則臺之所助者 與回時尙消息也. 至於盡谷而爲局 得泉而釀酒 鑿池而養魚 則遊賞之樂 豈有加於此哉. 噫 古人之臺多矣 而至今有不泯焉者何哉. 或人居而臺存 臺古而名存 則庶斯臺之不泯者 抑亦此山高水長乎. 余方寓居於龍洞精舍 鄭翁從孫世連請囑文 故極辭孤陋而不敢. 然余固亦樂遊於山水者 於是乎書. 同治 改年 庚午 八月 上澣 東萊后 鄭在綸 謹稿).”
○「반룡대에 올라[登盤龍臺]」
“험하고 큰 바위는 스스로 용의 형상을 이루었으며/ 상서롭게 앉은 바위의 비취색을 거듭하였구나./ 푸른 물이 전하는 소리 너에게 오라 말하고/ 새와 물고기 토하는 노래 그대와 함께 하였도다./ 위태한 소회 지극함은 성긴 잎새에서 생기고/ 높은 운치 맑기만 함은 해늦은 소나무에 있도다./ 벗을 불러 잔치 자리 자주 여는 것은/ 오직 옛 자취 오히려 남아 있음을 알기에.(岩岩老石自成龍 祥座盤巖翠幾重 碧水傳聲來汝敎 飛潛吐詠與君從 危懷方極生疎葉 高韻偏淸在晩松 喚友開筵頻有日 惟知古跡尙餘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