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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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喆壽 |
영어음역 | Gim Cheolsu |
이칭/별칭 | 청제(淸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우정임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철수의 호는 청제(淸齊)이다. 기장초등학교 등을 거쳐 1913년 부산 제2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7월 일본 게이오[慶應]대학에 입학하여 유학생 모임인 재 동경 한국학생학우회에 가입하였고, 『학지광(學之光)』 발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동경에서의 2·8독립선언에 대표위원 최팔용, 백관수, 김도연, 윤창석, 서춘, 이광수, 송계백, 이종근, 김상덕, 최한우 등과 함께 참여하여 일본 경찰에 피검되어 징역 9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뒤 1920년 4월 출옥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1920년 7월 15일 양산청년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초대 회장에 피선되었다. 또한 중앙의 조선청년회 연합회 상임위원으로 피선되어 항일 계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 양산 청년회의 각종 행사 및 저항운동에 나섰다.
일제의 회유를 거절하고 고향에 은거하다가 광복 후 미군정 입법위원이 되어 대한민국 건국에 노력하였고, 제2대 경상남도지사와 『자유민보』 사장, 3·1동지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1977년 5월 18일 향년 82세로 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김철수의 공을 기려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에 건국포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