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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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興國 |
영어음역 | Choe Heungguk |
이칭/별칭 | 강후(康候),남계(南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진상원 |
[정의]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강후(康候). 고려시대 문정공(文貞公) 최승로(崔承老)[927~989]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최흥국은 1588년(선조 21)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서 서사원(徐思遠), 이윤우(李潤雨), 손처눌(孫處訥), 곽재겸(郭再謙), 박수춘(朴壽春) 등과 더불어 화왕산성(火旺山城) 전투에 참가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漁谷洞) 지역으로 이주하여 냇가에 두연대(斗淵臺)란 정자를 만들어 놓고 자연과 더불어 소일하였다.
[학문과 사상]
“최흥국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門人)이다. 그러나 구지(舊誌)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라고 되어 있어 어느 것이 옳은지 잘 알 수 없지만, 유고(遺稿)를 살펴보면 한강의 문인이라고 생각된다.”라는 기록이 1878년(고종 15)에 이만도(李晩燾)가 편찬한 『양산읍지초(梁山邑誌草)』에 전한다.
[저술 및 작품]
최흥국이 한강 정구에게 올린 시가 남아 있다. “하늘에는 솔개가 날고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뛰고 있으니/ 천지간 어디엔들 도가 없으리오만 한 줄기 참다운 근원이 우리 선생에게 있구나/ 백발의 스승은 황하와 위수가 막혔음을 돌이켜 탄식하다가/ 청안으로 대해주시니 어려웠던 인연에 향기가 도누나(燕飛魚躍自天淵 一脉眞源屬我賢 白首還嗟江渭阻 靑眸相對香難緣).”
최흥국의 시에 대한 한강 정구의 답시(答詩)와 정구가 최흥국에 내려준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계에 또 한 와룡이 엎드려 사는 깊은 못이 있더니/ 제갈량이 불렀다는 ‘양보음’이란 노래를 읊조리며 옛 현인을 사모하도다/애석하지만 장롱 속에 아름다운 옥이 감추어져 있으니/ 일생의 영욕에 무슨 인연을 두리오(南溪又有臥龍淵 梁甫吟來慕古賢 可惜櫝中藏美玉 一生榮辱有何緣).”
“높고 밝음이 손상되어도 이렇게 늙은이를 찾아주니/ 눈동자는 푸르러지고 입은 열려서 쌓인 병도 낫는구나/ 우리들의 사귐이 오래된 줄 누가 알리오마는/ 늦은 봄날 연못에 핀 꽃이 이 정을 말해주누나(貶損高明訪先生 眸靑齒啓積疴醒 吾交愈久人誰識 春晩花塘報此情).”
[묘소]
최흥국의 묘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