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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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伽倻津 |
영어음역 | Gayajin |
영어의미역 | Gayajin Ferry |
이칭/별칭 | 용당나루,옥지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운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나루.
[명칭유래]
가야진은 본래 경상남도 밀양군 하동면 검세리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산군 원동면 용당리에 편입되었다. 가야로 건너가는 나루라는 뜻에서 가야진이라 하였다. 위치상으로 양산군 용당리에서 김해군 상동면 여차리 용당으로 건너가는 나루 터이기 때문에 용당나루라고도 한다. 과거 신라가 가야국을 칠 때 이곳이 전진 기지였기 때문에 지명과 관련된 전설과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옥지연(玉池淵)으로 불리는 것은 나루 앞의 용소와 관련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가야진에서는 신라 2대 임금 때부터 국가에서 주관하던 제의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사료를 보면 가야진은 신라가 450년(눌지왕 34)에 강 건너 가야를 공격하기 위해 왕래하던 자리로 후에 낙동강 수신(水神)에 제사를 올린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제사조에는 신라가 사독(四瀆)을 두고 지방 제후가 국가 제사를 지내게 했는데, 그 중 한 곳이 황산하(黃山河)라고 되어 있다.
한강과 포항 곡천강의 흥해, 금강의 웅진, 낙동강의 가야진 등 네 곳이 사독인데, 황산하는 바로 낙동강 가야진 일원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곳에서 가야와 신라가 교전을 벌였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 가에 있는 가야진나루는 1900년대 초반까지 하서면 소재지이었을만큼 흥성했던 포구였다.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진 혹은 옥지연(玉池淵)이라고도 하며, 고을 서쪽 40리 황산강 상류에 있다. 우리 세종조 때 황룡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물 때 비를 빌면 문득 효험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가야진(伽倻津)은 군(郡) 서쪽 33리에 있다. 속칭은 옥지연(玉池淵)인데, 신룡(神龍)이 있다는 곳으로서, 매년 춘추로 향축을 내려 제사를 행한다. 중사(中祀)이다. 금상(今上) 즉위(卽位) 3년 신축에 붉은 용이 진(津) 가운데에 나타났었다.”고 하였고, “가야진연연(伽倻津衍淵)은 군(郡) 남쪽 22리에 있다. 속칭은 적석룡당(赤石龍堂)인데, 춘추로 소재관(所在官)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