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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222
한자 碧山-
영어의미역 Byeoksan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벽산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형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2,785명[남 1,406명, 여 1,379명]
가구수 854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부영벽산아파트가 입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서 벽산마을이라 부른다.

[형성 및 변천]

덕계마을이 위치한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와 명곡리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 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고증해 주고 있다. 931년(태조 13) 2월 후백제의 격퇴에 공(功)을 세운 고을 사람 박윤웅(朴允雄)에게 관향(貫鄕)을 하사하면서 당시 양산시 웅상읍 지역이던 우풍현(虞風縣)이 흥려부(興麗府, 일명 興禮府)에 예속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전국 행정 구역 재편 때 웅상 지역을 경상도 울산군(蔚山郡) 서면으로, 1786년(정조 10)에는 웅촌면(熊村面)이라 개칭되었다. 1896년(고종 33) 8월에 전국 8도를 13도로 분할하면서 용당(龍塘) 이남은 웅상면으로, 대여(垈如) 이북은 웅하면(熊下面)으로 각각 분리되었다가, 1906년(고종 43) 9월에 칙령 제49호에 의거 울산군에서 양산군으로 편입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웅하면은 울주군 웅촌면으로, 웅상면은 양산군 웅상면으로 개칭되었다. 그 뒤 1917년 제일 처음 덕계리는 법정리에 속하다가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분동되면서 덕계마을은 덕계동에 속하게 되었다. 1999년 3월 덕계리에 벽산아파트 단지가 건립되어 입주가 시작되었고, 이로 인한 인구 증가로 2007년 웅상읍이 분동될 때 벽산마을 역시 덕계리에서 분동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주위로 천마봉과 천룡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멀리 서쪽으로는 천성산이 푸른 장벽처럼 솟아있다. 마을 앞으로는 회야강이 흐른다. 마을 주변에는 논과 밭이 많았지만 최근 급격한 산업시설 증가로 인하여 크게 줄어 들고 있는 형편이다.

[현황]

벽산마을덕계동의 중심부에 있는 마을로 2007년 12월 31일 현재 총 854가구에 2,78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인근 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 부영벽산아파트는 청년회와 부녀회의 조직을 통해 입주민의 화합 도모 및 봉사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율 방범 활동, 주차 관리 및 통제, 환경 관리 등도 하고 있다.

입주민의 화합 도모를 위해 2년에 한번씩 대규모 마을축제를 열어, 아파트 공동체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 뒤의 하천 주위에 산책로를 만들어 주민들의 건강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도보로 5분 이내에 모든 관공서와 마트, 병원, 약국, 한의원, 학원 등이 있어 입지 조건도 좋다. 주변에는 선우2차아파트가 있다.

국도 7호선 울산 방면으로 가다가 천불사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똑바로 들어오면 된다. 덕계초등학교벽산마을 앞에 있다. 마을과 관계된 지명으로는 조평(鳥坪), 배나무골, 범살미, 몰강소(沼), 소심산, 점비알, 옹기점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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