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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268
한자 小魯-
영어의미역 Sono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노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형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178명[남 88명, 여 90명]
가구수 63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노마을은 과거에는 주로 마늘, 벼 등의 농사가 주업이었으나, 현재는 개발로 말미암아 소노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기업들이 생겨나 소노마을 사람들이 여기서 경제적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명칭유래]

소노(小魯)란 두 글자가 말해 주듯이 적을 ‘소(小)’와 나라 ‘노(魯)’, 즉 작은 노(魯)나라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공자를 숭상하여 공자의 위판(位版)을 지키다가 왜구의 포로가 되어서도 『논어』를 강독하며 태연하게 있던 소산(蘇山) 정호인(鄭好仁)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그 후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같은 작은 노나라라 부르게 되었다. 작은 노나라라는 뜻에 맞게 소노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밖의 마을을 외리, 안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내리, 마을 뒷산 이름을 하늘 만딩이라고 불러왔다.

[형성 및 변천]

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게 된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구전 혹은 문헌적 자료는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인근에 위치한 양산IC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인 소노지석묘와 상북정마을 지석묘, 상신기마을 지석묘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소노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전으로 볼 수 있다. 마을에 본격적으로 사람의 주거가 형성된 시기는 현재 전하는 여러 문헌과 마을 주위에 산재해 있는 유적 및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임왜란 전후로 추측되어지는데, 동래 정씨가 안동에서 이주해와 씨족 마을을 형성하여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현재도 30여 가구의 동래 정씨가 마을에서 문중을 이루고 있다.

[자연환경]

마을은 인근 천성산에서 발원된 산자락과 접해 있어, 전반적으로 산속에 위치한 마을 분위기 강하다. 마을 내에는 소노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주고 있기도 하다. 마을이 산과 인접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소음원인 인근 도로와 떨어져 있다 보니, 전반적으로 주거 환경이 쾌적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공업시설 확장으로 인해서 주변 일대가 곧 공단으로 지정될 예정으로 있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양산시청에서 언양방면으로 진행하다가 보면 공단사거리와 양산IC를 차례로 지나게 되는데, 양산IC를 지나자 말자 만나는 삼거리에서 다시 한 번 더 직진하여 곧 우회전하면 소토마을 및 소토초등학교로 통하는 길이 나온다. 마을은 소토초등학교에서 300m가량 직진하면 만날 수 있다.

[현황]

2007년 12월 31일 현재 63가구, 178명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초원빌라 12세대이다. 소노마을 앞에는 동제를 지내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다. 동제는 정월 대보름에 지내고 있으며, 동제를 지내는 곳의 안쪽에 경로당이 있는 마을회관이 있다. 집집이 벽돌을 굴뚝이나 담, 기타 건물에 많이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근 소토리 지역에서 구운 벽돌이라고 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소토리 지역에는 벽돌을 굽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소노마을 입구에는 광주안씨(廣州安氏) 문중인 소계서원(蘇溪書院)이 있고 소계서원 앞에는 대원군 척화비가 있다. 소노마을 안으로는 동래정씨(東萊丁氏) 소노서원(小魯書院) 터가 있으며, 서원 터 앞쪽으로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저수지가 있다. 원래 소노서원은 조금 뒤편에 있었으며, 현재는 소노서원 터만 남아 있다. 소노서원 터 뒤편으로 성림사라는 절이 있다. 소노마을의 주요 지명으로는 소매골, 북방골, 세심지, 소새방우, 탕건방우, 삼대석, 북방우 등이 있다.

마을 인근에는 광주 안씨 문중인 소계서원이 있고, 그 소계서원 앞에는 대원군 척화비가 세워져 있다. 원래 척화비는 대성고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과거 석헌 안종석 선생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하고 있다. 대성고개는 과거 상북면과 인근지역을 이어지주는 주요 통행로가 있었다고 하며, 그 고개에 무송대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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