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82 |
---|---|
한자 | 銀海寺百興庵十王幀 |
이칭/별칭 | 현왕탱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철 |
제작 시기/일시 | 1782년 - 「은해사 백흥암 시왕탱」 제작 |
---|---|
현 소장처 | 「은해사 백흥암 시왕탱」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은해사 백흥암 |
성격 | 탱화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개설]
「은해사 백흥암 시왕탱」은 화기(畵記)에 ‘건륭사십칠년임인 오월일백흥암필공봉안우대웅전대시주비구복린(乾隆四十七年壬寅 五月日百興庵畢功奉安于大雄殿大施主比丘福燐…)’의 기록이 남아 있어, 1782년(건륭 47) 비구 복린(福燐)의 시주로 백흥암에서 제작되어 은해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면 중앙에 3폭 병풍을 배경으로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망자(亡者)를 심판하는 오관대왕(五官大王)인 보현왕여래(普現王如來)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 3위의 판관과 3위의 녹사, 3위의 동자를 그렸다. 채운(彩雲) 대신 장막을 그리고, 판관과 녹사들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형태 및 구성]
「은해사 백흥암 시왕탱」의 크기는 가로 89㎝, 세로 114㎝이다. 시왕 가운데 네 번째 오관왕 보현왕여래를 중심으로 뒤편에 장막과 3단의 병풍을 두었는데, 병풍이 화면을 거의 채우고 있다. 책상 앞에 앉은 시왕과 그 앞쪽 양편에 녹사와 판관, 동자 각 3위씩을 배치하였다.
[특징]
10폭으로 구성되는 시왕도 중의 하나로 건륭 47년의 기록을 통해 1782년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어 시왕도 중에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의 작품에 속한다. 도상면에서 통상적인 시왕과 다를 바 없지만, 판관 앞에 있는 권속들의 동감있는 자세가 동적인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