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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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旺山里寺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서길한 |
건립 시기/일시 | 고려 시대 - 왕산리 절터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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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 왕산리 절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시행, 유물 수습 |
소재지 | 왕산리 절터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 |
성격 | 절터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변천]
신녕면 왕산리는 일명 ‘칠밭골’로 불리는 곳으로, 왕산리 절터는 2000년에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절터는 인근에 있는 부귀사와 관련성을 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왕산리 미륵불은 원래 부귀사 입구인 칠밭골마을 미륵당 안에 모셔져 있었는데 저수지 조성공사로 199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부귀사는 591년(신라 진평왕 13)에 혜림 법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이 주석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1764년(영조 40)에 종각을 중수하였고 1804년(순조 4)에도 중수가 있었던 듯하다. 1871년(고종 8)부터 선곡 계천, 인담 성열 등이 화주가 되어 인근에서 시주를 모아 1873년 무렵에 중수를 완료하였는데, 특히 선곡 계천의 공이 컸다. 그러나 조선 시대 말엽 절에 큰 불이 나서 전소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188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하였는데, 본래의 위치는 지금 자리에서 왼쪽으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진 산 중턱이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왕산리 절터는 2000년에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상수도 수원지를 조성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6~7세기의 삼국 시대 분묘와 통일 신라~고려 초에 걸친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이곳에서 금동불 좌대(座臺)와 당초문 암막새 등이 수습되어 인근에 있는 사찰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황]
왕산리 절터는 인접하고 있는 부귀사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이전에 삼국 시대 분묘들도 확인되었다. 왕산리 절터는 발굴조사와 역사 기록을 토대로 보았을 때 통일 신라 시대부터 건립되어 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칠밭골의 상수도 수원지를 조성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절터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을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앞으로도 관계기관의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