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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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溪里文化柳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Munhwa-Ryu Clan in Samkye-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삼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삼계리에 있는 문화 류씨 집성촌.
[개설]
문화류씨는 황해도 신천군을 본향, 류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삼계리 문화류씨는 1455년 삼가현감 류유(柳囿)[생몰년 미상]가 단종 폐위에 항거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한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여 문화류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입지]
삼계리는 영덕 시외버스정류장에서 덕곡교차로를 지나 영덕풍력발전단지 방향으로 약 4㎞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영덕 읍내에 비교적 가까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교통이 불편했던 과거에는 오지마을과 다름없었으나 지금은 사방으로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산골마을이지만 비교적 논이 많고 3개소에 저수지가 있어 물의 공급이 매우 안정적이다.
[명칭 유래]
삼계(三溪)라는 지명은 흰댕이골, 땟골, 웃골의 세 갈래 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마을 입구에서 한데 모이는 곳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시거리’라 부르다가 삼계(三溪)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에 영덕현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보면 소재지가 되었다가 193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영덕면에 편입되었다.
[형성 및 변천]
문화류씨로 영덕지역에 처음 입향한 인물은 고려 말에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지내고 영덕읍 화개리에 은거한 류운(柳芸)[생몰연대 미상]인데 삼계리로 옮겨 터를 잡은 입촌조는 류운의 현손 류유이다. 류유는 단종이 폐위되자 1455년에 삼가현감(三嘉縣監)의 관직을 버리고 삼계에 정착하여 서책을 벗 삼아 후학을 양성하였다. 류유가 삼계리에 정착한 이후 많은 향현을 배출하고 후손들이 세거하여 문화류씨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류유의 7세손 류시경(柳時㯳)은 인조 10년(1632)에 무과에 급제하여 봉사(奉事)를 제수받았는데 병자호란 때 전사하였다. 류시경의 부인 영양남씨가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자결하니 세인들이 열녀라 칭송하였다. 류유가 삼계리에 정착한 이후 야성김씨 김수문(金秀文)과 평산신씨 신공망(申公望)이 이 마을에 입주하여 지금도 그 후손 일부가 거주하고 있다.
[현황]
1983년의 성씨별 거주자 분포를 보면 총 40가구 중 문화류씨가 28가구, 야성김씨 8가구, 평산신씨 2가구가 거주하였다. 1990년에는 총 35가구 중 문화류씨가 25가구, 야성김씨 5가구, 평산신씨 5가구가 거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