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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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都護府 |
영어공식명칭 | Sunheung Dohobu |
이칭/별칭 | 순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시대 | 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조선시대부터 개항기까지 두 차례에 걸쳐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개설]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는 1413년(태종 13)과 1683년(숙종 9) 두 차례에 걸쳐 설치되었으며, 1895년(고종 32)까지 존속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단산면·부석면과 봉화군 봉화읍·물야면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정부는 1413년(태종 13)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확립을 위해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여 기존 순흥부(順興府)를 순흥도호부로 개편하고, 지방관은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를 파견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 지리지에 1413년 순흥도호부의 설치 연혁 및 관원 등이 소개되어 있다. 순흥도호부 혁파와 복설은 『세조실록』과 『숙종실록』에 그 내용이 보이며, 『재향지(梓鄕誌)』에는 복설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순흥도호부가 순흥현(順興縣)으로 강등되는 사건은 『순조실록』 권30 29년 7월 갑인[22일] 기사에 보이며, 환원은 『승정원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개항기 이후 23부제는 1895년 5월 26일[음력]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에 관한 건」에 의거해 실시되었다.
[변천]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순흥도호부 편에는, “충숙왕 계축년에 또 태(胎)를 안치하고 승격시켜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삼았고, 충목왕 무자년에 또 태를 안치하고 순흥부로 승격시켰다. 본조 태종 계사년[1413년]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로 고쳤다. 별호는 순정(順政)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되어 있던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과 더불어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실패로 끝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단종복위운동으로 세조는 순흥도호부를 역향(逆鄕)으로 지목하고 고을을 혁파해 버렸다. 그리고 순흥도호부 영역에 이웃한 영천군과 풍기군, 봉화군으로 분속시켰다. 『세조실록』 권10 3년 11월 기축 기사에는 “마아현(馬兒峴) 냇물[川] 이서(以西)와 소백산 대령(大嶺) 이서는 모두 풍기군에 속하게 하고, 마아현 아래 냇물 이동(以東)과 문수산(文殊山) 아래 냇물 이서, 그리고 파문단곶(破門丹串) 냇물 2리(里)는 영천군에 속하게 하며, 문수산 아래 냇물 이동은 봉화현에 속하게 하면 …”이라며, 분속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단종 신원에 맞추어 순흥도호부 지역에서 복설 논의가 일어났다. 이에 1682년 폐 순흥도호부의 유학(幼學) 이정식(李廷植) 등이 상소하여 복설을 청원하였고, 숙종은 이를 윤허하였다. 이후 조정에서는 통치의 어려움을 이유로 복설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숙종의 뜻이 관철되어 1683년 순흥도호부가 복설되고 정재대(鄭載岱)를 순흥도호부사로 파견하게 된다. 하지만 1457년 혁파 당시 이웃 고을에 분속된 땅을 완전히 복구하지는 못하였다. 『여지도서』 경상도 순흥 편에 따르면, 이때 순흥도호부는 복설되었지만, 영천·풍기·봉화·안동의 많은 땅이 아직 환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복설된 순흥도호부는 1829년(순조 29) 순흥현으로 강등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이는 김말손(金末孫)이 아버지인 유학(幼學) 김현욱(金賢煜)을 살해하는 강상(綱常)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현으로 강등되고 10년간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다가, 1838년(헌종 4) 순흥도호부로 환원되었다.
개항기 이후 다시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조선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고종 32) 5월 26일[음력]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에 관한 건」에 따라, 1895년 윤5월 1일[양력 6월 23일] 부로 기존 8도 체제를 23부 체제로 개편하고,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을 부와 군으로 이원화하면서 전국이 23부 337군 체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순흥도호부는 23부 가운데 안동부(安東府) 순흥군에 편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순흥도호부의 존재는 전통시대 지방행정구역 구획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단종복위운동에 따른 순흥도호부의 혁파와 복설은 인적 연고 및 정치적 사건에 따른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