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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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萬采康萬龜旌閭 |
이칭/별칭 | 강만채·강만구 형제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883년 - 강만채·강만구 정려 명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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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강만채·강만구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굴도리식 |
정면 칸수 | 2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강만채·강만구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개설]
강만채·강만구 정려는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83년(고종 20)에 세운 정려이다. 강만채(康萬采)와 강만구(康萬龜) 의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강식(康植)의 아들이다. 형제는 어머니에 대한 효행이 지극하여 예산 유생들의 상소로 1883년 효행 정려를 하사받고 각각 조봉대부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강만채·강만구 형제는 어머니의 몸에 난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짜고 똥을 맛보고 약을 달여 먹였다. 또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어머니의 목숨을 3년간 연명시켰다고 전한다. 이후 어머니가 죽자 3년간 시묘를 하는 등 효행이 지극하였다.
[위치]
강만채·강만구 정려는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추사고택 동쪽에 있다.
[형태]
강만채·강만구 정려는 50여 평[약 165㎡]에 이르는 대지를 조성한 후 정려를 세웠는데 주변은 낮은 철책으로 보호시설을 설치하였다. 정려는 2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으로, 굴도리[둥글게 만든 도리]식 가구이며 중방 위에는 메뚜기머리를 장식하였다. 효자문의 뒷면 벽은 시멘트로 막았고 나머지 3면은 홍살을 세웠다. 좌우의 박공판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려 내부의 왼쪽 칸에는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강만구지려 상지이십년계미구월 일 명정(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康萬龜之閭 上之二十年癸未九月 日 命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오른쪽 칸에는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강만채지려 상지이십년계미구월 일 명정(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康萬采之閭 上之二十年癸未九月 日 命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현재 강만채·강만구 정려 앞에는 2001년 세운 효자정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정려 동쪽에는 강만채의 묘와 1982년 세운 묘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