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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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箕萱 |
영어음역 | Gi H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대중 |
[정의]
신라 하대의 지방세력가.
[개설]
기훤(箕萱)은 신라 말기 안성·죽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세력가로 가계나 출생에 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진성여왕 때 실정이 겹치고 재해가 잇달아 일어나던 가운데 국내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조세를 바치지 않으므로 국고가 비어 재정이 궁핍하였다. 이에 신라 조정이 공부(貢賦)를 독촉하자 889년(진성여왕 3) 전국에서 이에 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초적(草賊) 세력이 죽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기훤은 이를 대표했던 지방 세력가였다.
[활동사항]
신라 말 농민 반란은 사벌주(沙伐州)[상주]의 원종(元宗)·애노(哀奴)의 난을 시작으로 890년대에만 20여 회가 일어났다. 기훤도 이때 죽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기훤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부대를 이끌었다. 이로 보아 죽주의 실질적인 지배자의 하나였던 것 같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891년(진성여왕 5) 기훤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기훤은 그를 예로써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훤의 세력이 어느 정도 컸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궁예는 기훤의 부하인 원회(元會)·신훤(申煊) 등과 결탁하여 892년 북원(北原)[지금의 원주]의 반란군 두목 양길(梁吉)에게 갔다고 한다. 이후 기훤의 세력은 급속히 무너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