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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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世弼 |
영어음역 | Kim Sepil |
이칭/별칭 | 공석(公碩),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산23번지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영의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활동사항]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서 홍문관응교로 기용된 뒤에 사가독서의 은전을 입었다.
이후 전한·형조참판·부제학을 지내고 외직으로 광주목사(廣州牧使),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대사헌·이조참판을 지내고, 1519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가 사사(賜死)되자, 임금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유춘역(留春驛)으로 장배(杖配)되었다.
[학문과 사상]
1519년 조광조를 사사한 일을 규탄하다가 장배된 뒤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십청헌(十淸軒)’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다가 생을 마쳤다. 학문함에 있어서 격물·치지·정심을 앞세웠고, 글을 지음에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는 습관이 없었다고 하며, 여러 책을 두루 읽어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뜻을 추구함에 정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십청헌집(十淸軒集)』4권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산23번지에 있다. 송시열이 찬한 신도비가 있으며, 2002년에 건립한 십청헌 김세필선생 문학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주의 팔봉서원(八峰書院)에 향사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