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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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士渭 |
영어음역 | Lee Saw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 고매곡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다. 형제로는 전서(全書)를 지낸 형 이사영(李士潁)과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아우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伯持)이다.
[활동사항]
1360년(공민왕 9)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대언(代言)과 개성유후(開城留後)를 역임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 왕이 처음으로 경연(經筵)을 열었을 때 참찬관(參贊官)이 되었으며,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이듬해에는 서해도관찰사(西海道觀察使)가 되어 목민관 직책을 수행하였다. 이색(李穡)과 친교가 있었으며, 『목은집(牧隱集)』에 그에 관한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고려가 멸망하자 이사위의 아버지는 새로운 왕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였지만, 이사위는 벼슬길에 나섰다. 1396년(태조 5)에 “도성(都城) 감역관(監役官)인 전 사재감(司宰監) 박리(朴理)가 군인을 시켜서 큰 돌을 운반하게 했는데, 길이 좁아서 전 밀직(密直) 이사위(李士渭) 집의 울타리를 걷어치우니, 사위가 박리를 때리고 욕설을 하였다.”하여 형조에서 상소를 하여 순군옥에 갇혔다가 곧 석방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 고매곡에 있다.
[변천]
2009년 3월 4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6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