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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946
한자 李弘幹
영어음역 Lee Honggan
이칭/별칭 대립,쌍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86년연표보기
몰년 1546년연표보기
본관 용인
대표관직 첨지중추원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 증조할아버지는 이승충(李升忠)이고, 할아버지는 이봉손(李奉孫)이며, 아버지는 사간 이효독(李孝篤), 어머니는 최명근(崔命根)의 딸이다. 부인은 이규(李逵)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홍간(李弘幹)은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권지승문원정자(權知承文院正字)에 처음 제수되었다. 곧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에 임명되었다. 1516년에 노산군연산군의 후사를 세우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자 이홍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산연산은 이미 국가에서 군(君)으로 봉하고 종실로 대우하여 진실로 속적이 끊어진 것이 아니니, 종실 중에 후사될 만한 사람으로 후사를 삼아 제사를 받들도록 하는 것은 단연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1517년(중종 12)에 평안도평사(平安道評事)를 파견하게 되었을 때 “양계(兩界)의 평사는 범상한 사람을 시킬 수 없고, 특히 평안도에는 변방의 경보(警報)가 있으므로 품질(品秩)이 높고 명망이 중한 자”를 보내야 한다며 이홍간이 낙점되었다.

일찍이 한림으로 있으면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과 교유하였는데 김정 등의 편협하고 과격함을 지적하며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을 것이라면서 경계하였다. 중종반정 직후인 1506년에 남곤(南袞)의 고변으로 박경·김공저 등을 무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게 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남곤을 규탄하였다.

1520년 2월에 사간원정언에 발탁되었고 이어서 홍문관교리, 세자시강원사서, 호조·예조·병조의 좌랑과 정랑, 세자시강원필선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남곤과 관계가 나빠져서 수원·곤양·옥천 등 지방의 수령을 전전하였다.

1527년(중종 22) 5월에 사헌부장령으로 발탁되었으며 11월에 경연(經筵)에 참여하여 1513년에 박영문(朴永文)·신윤무(辛允武)의 옥사에 연루되어 먼 곳으로 쫓겨난 영산군(寧山君)[성종의 13남]을, 세종양녕대군을 방면한 고사에 비유해 사면할 것을 청하여 방면하게 하였다. 그러나 강직한 언론을 꺼려한 대신들의 배척으로 파직되었다. 곧 복직된 이홍간은 군기시정(軍器寺正)·종부시정(宗簿寺正)과 공주·청주·광주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11월에 인종의 빈전도감사(殯殿都監事)에 참여한 공로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승진하였고, 다음해 12월에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 도중 사류하(沙流河)에서 죽었다.

[묘소]

묘소는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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