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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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德徵 |
영어음역 | Jeong Deokjing |
이칭/별칭 | 성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유(聖由). 정몽주(鄭夢周)의 10세손으로, 영장(營將)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정덕징(鄭德徵)[1657~1739]은 조선 후기 효종 대에서 영조 대에 활동한 인물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훈련원주부·판관·서생첨사(西生僉使)·진안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오랫동안 벼슬을 하지 않다가 나주영장·정주목사 등을 거쳐, 함경남도와 경상우도의 병마절도사 등의 외직을 두루 거쳤다. 내직으로는 금군장으로서 여러 군문(軍門)에 편력하고 동지중추(同知中樞) 겸 부총관(副摠管)과 절충장군(折衝장군)을 지낸 뒤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말년에는 우로전(優老典: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대접으로 주는 벼슬)으로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다고 사양하고 거문고와 매화 등을 감상하며 초연하게 지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