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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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寧金氏 |
영어음역 | Gimnyeong Kimssi |
영어의미역 | Gimnyeong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수지구 죽전동 |
집필자 | 김장환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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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7세기 전반 |
성씨시조 | 김시흥(金時興) |
입향시조 | 김기영(金起永) |
[정의]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기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김녕(金寧)은 경남 김해의 옛 지명으로 신라 때는 금관군(金官郡), 고려 때는 금주(金州)로 불렸다.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의성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김녕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다가 고려 말에 지명이 김해로 개칭되자 김해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수로왕 계통의 김해김씨와 혼돈되므로 김해김씨를 선김(先金)으로, 김녕김씨는 후김(後金)으로 칭하다가 1865년(고종 2) 왕명에 의하여 김녕으로 확정하였다.
[입향경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마을의 김녕김씨 입향조는 세조 때 공조판서에 오르지만 박팽년 등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했다가 1456년(세조 2) 사육신과 함께 순절한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채은공 김기영(金起永)[1610~1647]으로 알려져 있다.
김문기가 참형을 당하면서 영월군수이던 아들 김현석이 순절하였고, 김문기의 손자 김충주와 증손 김현남, 김현손, 김약전 등이 모두 충효로 가문을 빛내어 ‘5세충효’의 정문이 세워겼다.
한편 김문기가 변을 당하자 손자 김충주는 노모를 업고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 숨어들어 숯을 구우며 살아갔다. 그의 후손들이 화성군 동탄을 거쳐 채은공 김기영에 이르러 갈곡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황]
약 350년 전부터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마을을 중심으로 김녕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던 갈곡마을이 구갈 3지구 택지 지구로 지정되어 개발됨에 따라 더 이상 집성촌으로 남아 있기는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