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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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胎敎新記 |
영어음역 | Taegyosingi |
영어의미역 | New Record of Prenatal Car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양화 |
성격 | 태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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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1739~1821]|유희(柳僖)[1773~1837] |
저자 |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1739~1821] |
번역자 | 유희(柳僖)[1773~1837] |
간행자 | 유희(柳僖)[1773~1837] |
저술연도/일시 | 1800년(정조 24) |
편찬연도/일시 | 1800년(정조 24) |
간행연도/일시 | 1801년(정조 25) |
권수 | 1권 |
책수 | 1책 |
표제 | 胎敎新記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소장처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로 664 |
[정의]
1801년(순조 1) 간행된 여류학자 사주당 이씨의 태교서.
[개설]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1739~1821]는 여류문장가이며 박학으로 당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유한규(柳漢奎)와 혼인하여 1남 3녀를 두었는데, 34세 되던 해에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서 출산한 아들이 유희(柳僖)[1773~1837]이다. 유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음운학자로서 독창적인 방법으로 한글을 연구하여 훈민정음의 자모를 분류·해설하는 공을 세우고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편찬/발간경위]
『태교신기(胎敎新記)』는 원래 한문으로 쓰여졌는데, 1801년(순조 1) 아들인 유희가 음의(音義)와 언해를 붙여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원본은 소재가 불분명한테, 1938년에 경상북도 예천(禮泉)에서 간행된 석판본이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태교신기(胎敎新記)’이다.
[구성/내용]
번역문에 나오는 모든 한자에는 한글로 음을 달았는데, 한 문장씩 떼어서 먼저 한글로 토를 달고, 이어서 우리말로 옮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2부작, 총 10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태교의 이치를, 제2장에서는 태교의 효험을 설명하였고, 제3장에서는 옛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제4장에서는 태교의 구체적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부분에서도 태교의 중요성을 또다시 강조하여 옛 사람들이 행한 일이나 관계 조항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남편에게도 태교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여 부인에게 가르쳐 주도록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태교신기』는 조선시대에 저술된 최초의 태교 총서로서, 이론과 실제를 구비하여 태교의 중요성을 체계화한 저술로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남자의 태교가 중요하다는 점을 말한 것이나 근친혼의 위험성을 경고한 점 등은 서양보다 2백여 년이나 앞서 우생학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여학교 교재로 쓰였다. 또한 『태교신기』 언해본은 한글 연구에서 특히 귀중한 자료로 꼽히는데, 1938년에 나온 석판본(石版本)의 경우 내용을 모두 현대어로 바꾸어 놓아 19세기 초기 한자음과 근대 국어의 음운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