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212 |
---|---|
한자 | 吳道一肖像 |
영어음역 | O Doil Chosang |
영어의미역 | Portrait of O Doil |
이칭/별칭 | 오도일 초상화,오도일 영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98-1[오산로61번길 2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은선 |
성격 | 인물화|초상화|일반회화 |
---|---|
제작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서체/기법 | 견본채색 |
소장처 | 해주오씨 문중 |
소장처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98-1[오산로61번길 29] |
소유자 | 해주오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용인시 향토유적 제14호 |
문화재 지정일 | 1990년 11월 22일 |
[정의]
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도일의 초상화.
[개설]
오도일 초상은 1703년 울진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위패를 배향하면서 모사하였던 초상화로 추정된다. 이후 1864년(고종 4) 고산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철향될 때 용인 가묘의 영당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오도일 초상은 후대에 다시 이모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빠른 시일 안에 보수를 해야 하는 상태이다. 이어진 배접천까지 분리된 상태로 안료의 박락이 전점 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태 및 구성]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구분면(全身九分面)의 상으로 안면과 상반신을 유난히 크게 배치하여 전체적인 비율과 구도가 잘 맞지 않는다. 머리에 흑색 오사모를 쓰고 있으며, 녹포단령을 입고 있고, 복부 부근에서 공수를 한 자세이다. 모체(帽體)는 높고 양각이 좌우로 곧게 뻗쳐 있다. 가슴에는 단학 흉배를 달았고, 허리에는 삽금대(鈒金帶)를 둘렀다. 단학의 모습은 다소 어색하고, 삽금대는 탈색이 많이 진행되었다.
오른쪽 어깨는 작고 둥글며, 왼쪽 어깨는 그에 비해 약간 크고 각진 형태로 표현하여 가깝고 먼 원근법을 나타냈다. 그러나 좌·우 소매와 포의 형태, 팔(八)자형으로 벌린 발, 접이식 의자의 형태가 거의 정면상에 가깝고 좌우대칭으로 그려져 있어 실제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의자 위에는 호포가 덮여 있고, 족좌대 위로 호랑이의 정면 얼굴이 살짝 드러나 있다. 전체적으로 덧칠해진 부분이 많으며, 특히 오사모와 복식선의 테두리가 다소 두껍고 무겁게 칠해졌다. 얼굴은 세선으로 윤곽과 이목구비를 잡고 여러 선을 반복하여 칠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코끝은 붉은빛으로 엷게 선염하였다. 초상화의 배경에는 잔잔한 무늬가 있는 돗자리를 깔았다.
초상화 상단에 “울진현령오공도일유상(蔚珍縣令吳公道一遺像)”이라는 화제(畵題)가 있고, 완산(完山) 최석정(崔錫鼎)의 찬문이 있다. 찬문의 내용은 “입이모왕 출이장민 유강유청 불치불린 민왈부모 비세가망 공귀간조 공상재당(入而謨王 出而長民 惟剛惟淸 不緇不磷 民曰不母 婢世可忘 公歸干朝 公像在堂)”이다. 명확한 제작연도가 없어 제작일시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특징]
오도일 초상은 후대에 그려진 이모본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상반신이 유난히 강조되어 어색한 구도이기는 하나, 조선 후기 초상화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초상화이다. 다만 좌우대칭으로 그려진 복식이나 접이식 의자, 족좌대와 발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인체 및 대상의 구도를 이해하는 해석이 약간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얼굴 표현에서 오도일의 성품을 화원이 나름대로 독특하게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